엄마, “얘 너 좀 친다?” 해봐~

by지후트리
수어그림_대화.JPG수어그림 < 대화 > / 지후트리 / 2019


오전 수영을 위해 천근만근인 눈꺼풀에 힘을 주고 눈을 떴다. 몸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일어나기 위한 몸부림처럼 팔다리를 길게 늘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엄마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딸, 잘 지내?”

전화하라는 말이었다. 굿모닝 인사를 전하고는 며칠 전 내가 전화했을 때 왜 콜백을 안 해줬느냐고 물었다. 바빠서 미루다가 타이밍을 놓쳤다며 오늘은 휴무니까 전화하란다. 휴무인 거 알겠다고 마음속으로 답한 뒤 일단 수영을 하러 나갔다.


눈을 떴을 때의 몸 상태 그대로 수영장까지 끌려온 기분이었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어서 쉬고 싶은데 제대로 쉬지 않아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수영장에서 종종 만나는 사람들 중 여성 회원은 나를 포함해 둘뿐이다. 오랜만에 샤워실에서 마주친 그녀는 휴가를 다녀와 바다 햇볕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9시부터 강습인데 둘 다 지각이었다. 이미 수영복까지 다 입어놓고는 킥판을 들고 발차기하는 시간만큼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샤워실에서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잠시 뒤 각자의 반으로 향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내가 풀장에 들어갔을 때 대체 선생님이 접영 티칭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로록 달려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수영을 잘하는 사람에게 배웠던 접영의 감각이 벌써 조금 사라진 듯했다. 오늘은 거의 접영만 반복했다. 내 문제는 팔을 돌려 물 밖으로 꺼낼 때 팔을 접는다는 것, 웨이브를 탈 때 턱을 아래로 내려야 하는데 자꾸 고개를 들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웨이브가 되다가 안 되다가를 반복했다.


뭐, 접영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까.

다음 달부터 자유수영을 추가했으니 이제 연습전이다. 물속에서 계속 몸을 굴리다 보면 언젠가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접영을 기억하는 날이 오겠지.


수영을 마치고 몇몇 수영 친구들과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뭐가 안 됐는지, 주말에는 왜 수영장에 못 나왔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한바탕 근황을 나눈 뒤 자연스럽게 다음 달 이야기가 나왔다. 자유수영을 추가했다고 하니 연습만 열심히 하면 실력이 금방 늘 거라고 했다. 10월에 중급반으로 올라가도 될까 싶어 물었더니 대답은 단호했다. 무조건 가능. 얼레벌레 수영하는 사람도 중급반에 많으니 얼른 올라가서 티칭을 잘하는 선생님에게 제대로 배우는 편이 낫다고 했다. 지금 반은 진도가 빠른 대신 세세한 티칭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말에도 자유수영에 나가 자유형과 접영을 실컷 연습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나는 엄마와 통화를 자주 해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생각해서 끊은 줄 알았단다. 그 의심은 정말 오랜 통계치에 의한 것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통화는 이상하게도 각을 잡고 해야 하는 연락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시간이 애매하면 ‘이따 해야지, 이따 해야지’ 하다가 결국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엄마에게는 그런 딸의 모습이 오래 남아 있었나 보다. 요즘 들어 전화를 자주 하는 내가 낯선지 “너 엄마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통화가 이어지면 싫지 않은 눈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가 유산균을 만들어 먹고 있는데 오늘은 거기에 복숭아를 곁들였다고 했다.


“맞아, 엄마. 나도 최근에 복숭아 먹었어. 나는 천도복숭아 좋아해.”


복숭아 이야기를 하다 문득 엄마가 물렁물렁한 복숭아 파인지 딱딱한 복숭아 파인지 궁금해졌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과일 취향은 엄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두 모녀 모두 딱복 취향이었다. 진짜 웃긴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살면서 과일이 식탁에서 사라진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과일을 좋아해서 사시사철 제철 과일을 먹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마다 식탁 위에 올라오던 과일이 달랐고, 그 과일을 씻어주던 시절의 향기와 온도까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싱싱한 과일을 골라 사 먹는 일을 참 좋아한다. 과일의 맛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함께 입에 머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복숭아 한입을 베어 물면 어느 여름의 온도가 따라오고, 사과를 깎으면 오래전 집 안의 냄새가 슬쩍 되살아나는 식이다. 결국 취향이라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서 조금씩 옮겨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다시 물었다. 얼마 전 한 무용축제에서 수어 퍼포먼스 워크숍을 하게 됐다고 말했더니 “잘됐네” 하는데, 영 집중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엄마. 자, 따라 해 봐.”

“뭘?”

“얘, 너 좀 친다?”

엄마가 수줍게 웃었다.

“그게 뭐야.”

“요즘 말로 ‘너 좀 대단하다’, ‘너 좀 한다’ 이런 뜻이야. 엄마, 한 번만 해줘 봐. 정확한 발음은 이거야.

‘얘. 너 좀 친다?’”


잠시 후 엄마는 정말 입력된 값을 그대로 출력하는 로봇처럼 말했다.

“얘. 너. 좀. 친. 다……ㅎㅎ?”

함박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하. 고마워, 엄마.”


아침부터 수영을 하고도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딸에게 공복인 엄마는 기가 빨렸는지 밥을 먹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밥 맛있게 먹으라며, 오늘 하루 잘 보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아침에 발견한 엄마의 “딸, 잘 지내?”가 다시 생각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과 타이밍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엄마는 전화를 기다렸고, 나는 전화를 해야지 생각했다. 엄마는 과일을 씻어 식탁에 올렸고, 나는 그 과일을 먹으며 계절을 기억했다. 아주 오랫동안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딱복 취향도 엄마에게서 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요즘 말도 하나 가르쳐줬다.

이따 또 전화해야겠다.

“엄마, 얘 너 좀 친다? 다시 해봐.”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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