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외부에서 업무를 보고 돌아오거나 집에서 한참 작업하다 외출한 뒤, 완전히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좋아요~”
처음에는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루가 괜찮았던 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치가 어느 정도 채워진 날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옮길 물건이 있어 현관문을 잠시 열어두었다. 물건을 모두 옮기고 문을 닫는데 아주 밝고 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좋아요~” 닫혀가는 문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아, 나 집에 들어올 때마다 이러고 있었구나. 몇 번이고 반복했던 행동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스스로가 조금 귀여웠다. 행복이란 게 정말 멀리 있지 않은가 보다. 삶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순간에는 행복한 이유를 애써 찾아내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나는 현관문 하나를 닫으면서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그런 나를 조금 더 자주 들여다본다. 한동안 수영에 푹 빠져 지내면서 생활에도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어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몸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 수영을 시작한 데에는 외부의 영향도 있었다.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타인일 수 있어도 결국 해내는 것은 내 몫이다. 이 사실을 인지한 뒤부터 수영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수영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은 덤이 되었다. 가장 먼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물속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것, 내 몸이 조금씩 무언가를 익혀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행동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면 삶의 방향은 쉽게 흔들린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움직이고, 인정받기 위해 잘하고 싶어지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기분까지 움직인다. 시선의 시작점을 나에게 돌려놓으니 질문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나는 이걸 좋아하는가. 나는 지금 즐거운가. 이 시간이 나에게 좋은가.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수영장에 가면 물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빛도 함께 흔들린다. 별것 아닌 그 장면이 사람을 말도 못 하게 기분 좋게 만든다. 사람들이 왜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어 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주말에도 혼자 수영장에 갔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일단 물과 더 친해지고 싶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면 뭐라도 생긴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햇빛을 보고, 물에 들어가고, 걷고, 사람을 보고, 몸을 움직인다. 하루가 끝나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수영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음 놓침’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반복해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일이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동작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수영 자체가 주는 해방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문장을 읽다가 수영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오래 생각했다. 요즘 유난히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글과 영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많아진 게 아니라 이제야 내가 그런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시선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보다 타인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안에서 나를 놓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지조차 희미해진다. 나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무엇을 먹었을 때 몸이 편안한지, 어떤 순간에 피로해지는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하루 동안 내가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잘하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도 그 안에 있다. 수영을 배우다 보면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다. 발차기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고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수업 중 누군가의 짜증과 마주치는 날도 있다. 그 감정까지 내가 받아낼 필요는 없다.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직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이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못하는 순간이 있는 게 당연하다. 요즘은 이 문장을 나에게 허락해주려고 한다. 잘해야만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내 편에 두는 연습에 가깝다.
수영을 가기 전에는 짧게라도 일기를 쓴다. 몇 줄 적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기를 쓰고 나갈 채비를 하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접영과 평영의 동작을 영상으로 보며 머릿속으로 몸의 움직임을 그려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시선이 온전히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꽤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대단한 자기 확신이나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보고, 못하는 나를 너무 오래 미워하지 않는 것. 타인의 반응보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별것 아닌 순간에 기분 좋아하는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어쩌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사소한 나를 계속 발견해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현관문 앞에서 “좋아요~”라고 말하던 나도 그런 발견 중 하나였다. 누구에게 들려주려고 한 말도 아니고, 좋은 하루였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한 말도 아니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현관 앞에서 내 몸과 마음이 먼저 하루에 대한 감상을 내놓은 셈이다. 예전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행동을 이제는 한 번쯤 바라보고 웃어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만큼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의 행복이 내 기준치만큼 차오른 날이면 나는 아마 또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며 말할 것이다. “좋아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요즘은 꽤 마음에 든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