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동생은 제법 끈끈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다. 남매인데 왜 형제애냐고 묻는다면, 동생에게 나는 한동안 누나보다 형에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와 남동생은 키 차이가 제법 났다. 나란히 서면 내가 머리 하나는 더 있었달까. 그만큼 어린 동생에게 나는 제법 큰 사람이었다. 내가 다섯, 여섯 살 쯤이었을 거다. 나는 유치원에 다녔고, 아직 유치원에 갈 나이가 아니었던 동생은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그 무렵 요구르트 아줌마가 집에 다녀가면 동생은 요구르트 두 개를 두 손에 꼭 쥐고 마루에 앉아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혼자 먼저 먹어도 될 텐데, 내가 집에 들어서면 그제야 하나를 내게 건네 함께 나눠 먹었다고 엄마가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조그마한 아이가 요구르트 두 병을 쥔 채 누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초등학생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집으로 오는 길에 용돈을 아껴 산 솜사탕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목에 핏대까지 세운 채 집으로 달려온 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아아. 누나 친구가 내 솜사탕 뺏어갔어. 나 한 입도 안 먹었는데 빼앗겼어. 으아아아앙!”
누구인가. 누가 감히 내 동생의 솜사탕을 빼앗아 갔는가.
정의로운 누나였던 나는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며 말했다.
“누구야. 누가 그랬어. 내가 솜사탕 다시 찾아다 줄게.”
동생에게 인상착의를 듣고 보니 범인은 나와 같은 반 남학생이었다. 그 아이가 어디 사는지 기억을 더듬어 동생의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계단을 5층까지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세요?”
“네, 저 ○○ 친구인데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현관문이 열리고 친구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그래, 안녕. 무슨 일이니?”
“안녕하세요. 저는 ○○이 친구 지후라고 합니다. ○○이가 제 동생의 솜사탕을 빼앗아 갔다고 해서 찾으러 왔어요.”
동생은 무서웠는지 내 뒤에 바짝 붙어 옷깃을 붙잡고 있었다. 당황한 친구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 아이는 결국 솜사탕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미 빼앗긴 솜사탕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지만 새 솜사탕을 사 먹을 돈을 건네받았다. 친구 어머니는 아들에게 내 동생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건성건성 하는 사과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과도 받았고, 솜사탕 값도 되찾았다.
우리는 그 집을 나오자마자 솜사탕 기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새 솜사탕을 손에 쥔 동생은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웃었다.
그 사건 이후였는지 모르겠다. 동생에게 나는 점점 누나보다 형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도 한동안 나보다 키가 작았던 동생은 종종 나를 “누나” 대신 “형”이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든든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 집안에 남자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 어린 내게는 꽤 큰 불안이었던 것 같다. 남동생이 혹시 엇나가지는 않을까,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나 역시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과부의 딸’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본 적이 있었기에 동생만큼은 그런 결핍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원래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동생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바깥으로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용돈을 받으면 아껴서 동생에게 조금 더 나눠주었고, 같이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봤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어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옆에서 함께 보다 보니 어느새 그의 취향 일부가 내게로 건너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 취향 가운데에는 그 시절 동생에게서 온 것들도 제법 있다. 나는 동생을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우리 둘은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나누어 가지며 자랐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동생이 고3 수험생이었던 어느 날, 잊히지 않는 밤이 있다. 여름이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다. 바카라상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던 작은 방에서 독서등 하나를 켜두고 우리는 방바닥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한참 나누던 중 동생이 불쑥 말했다.
“누나, 나는 누나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버텼을 것 같아. 진심으로 고마워.”
목소리에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차마 옆을 돌아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렸다가는 나도 그대로 울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나란히 천장만 바라본 채 한참을 울먹였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 붓겠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퉁퉁 부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까르르 웃었다.
오래전 남매들이 서로의 연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함께 본 적이 있다. 방송을 보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이야기를 꺼냈다.
“울면서 했던 이야기가 잊힐 수가 있나. 그거 우리의 큰 상처인데.”
“그래도 이거 보니까 엄마의 존재도 컸지만 우리도 서로 많이 의지한 것 같아서.”
서사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우리는 그랬다.
아버지의 부재를 같은 집 안에서 겪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견뎠다. 엄마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 둘 역시 서로에게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생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자기 몫의 시간을 견뎠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슬픔을 조금씩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란 동생은 여러 역경을 지나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취업했고, 지금까지 자기 자리를 단단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가정을 꾸린 지금은 올케와 딸의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어릴 적 내 뒤에서 옷깃을 붙잡고 솜사탕을 되찾으러 갔던 아이가 이제 한 가정을 바카라임지는 어른이 되었다.
재미있는 건 우리의 위치도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이다.
동생은 처음에는 내가 선택한 직업과 삶의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길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는 누나가 걱정되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보다 내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자기보다 누나에게 더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잘될 거라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나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언제까지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그냥 묵묵히 믿어준다.
내가 힘들 것 같으면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자기에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하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한때 내가 동생의 손을 붙잡고 5층 계단을 올라갔는데, 이제는 그 아이가 내게 필요하면 자기 손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혼 전에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종종 내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잘 지내?”
그러고는 꼭 같은 말을 했다.
“난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술에 취하면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말이 조금 쉽게 나오는 모양이다. 동생은 취할 때마다 자신의 안위보다 누나의 안위를 물었다. 나는 잘 지내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행복한지. 어릴 때 요구르트 두 개를 손에 쥐고 누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누나가 잘 지내는지를 궁금해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관계에는 언제나 기다림과 손잡음이 있었다. 동생은 요구르트를 먹지 않고 나를 기다렸고, 나는 울고 있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솜사탕을 찾으러 갔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는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버텼고,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워서야 서로에게 얼마나 의지해왔는지를 처음 입 밖으로 꺼냈다.
어릴 때 나는 동생에게 큰 사람이었다. 키도 컸고, 목소리도 컸고, 겁 없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 만큼 용감한 누나였다. 그래서 동생은 나를 가끔 형이라고 불렀다.
이제는 그 아이가 나보다 훨씬 든든한 사람이 되어 내 옆에 서 있다.
누가 누구를 키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동생을 지키며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생 역시 나를 지키며 자랐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를 우리가 대신 채울 수는 없었지만, 그 빈자리 곁에서 서로가 너무 외롭지 않게는 해줄 수 있었다.
서사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우리는 그랬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자랐고, 이제는 서로의 등을 받쳐주며 살아간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