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단어를 공부하다 보면 자꾸만 동작의 생김새가 궁금해진다. 이 동작은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
왜 하필 손이 여기에서 시작해서 저곳으로 움직일까. 누가 처음 이런 동작을 보고 이 단어를 떠올렸을까.
수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듣는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단 외우세요."
어느 교육원을 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들도 가끔은 단어의 어원을 모르실 때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기계가 아닌 이상 그 많은 단어의 유래를 전부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나라의 언어를 배우든 단어는 일단 냅다 외우는 것이 상바카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외운 단어를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 단어가 왜 그런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기억이 꽤 오래간다. 어원을 알게 되는 순간, 외워야 할 기호였던 단어에 작은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글에 첨부된 수어그림은 <술>이다.
<술>은 술을 마신 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수어다. 검지와 중지를 펴 끝이 왼쪽을 향하게 한 뒤, 손가락의 바닥을 턱에 댔다가 이마 족으로 올려 표현했다. 턱에서 이마로. 술기운이 얼굴 전체로 올라와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의 모습을 손의 움직임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어원을 알고 나면 단어가 전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 술을 마셨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것을 바라보던 누군가는 술이라는 것의 수많은 특징 가운데 '붉어진 얼굴'을 기억했다. 술병도 아니고, 술잔도 아니고, 무언가를 마시는 행동도 아닌 사람의 얼굴을 선택했다. 나는 그 지점이 재미있다. 단어에는 사전적 의미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단어를 별생각 없이 사용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너무 익숙해서 그 말이 왜 그런 소리와 모양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할 틈조차 없다. 수어는 때때로 그 익숙함을 낯설게 만든다.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그 단어가 만들어지던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누군가의 행동이었을 수도 있고, 몸의 변화였을 수도 있다. 사물의 생김새나 오래된 생활방식이 손에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 한 단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을 때도 있다. 어원을 단순히 단어를 잘 외우리 위한 암기법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어원을 찾아가는 일은 단어의 앞모습만 보고 지나치지 않고, 슬쩍 뒤고 돌아가 그 뒷모습까지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앞에서는 그저 <술>이라는 뜻을 가진 하나의 손동작이지만, 뒤로 돌아가 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누군가가 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또 다른 누군가도 있다. 그리고 그 오래된 관찰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지금 내 손까지 도착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단어에는 조금씩 온도가 생긴다.
어떤 단어는 따뜻하고, 어떤 단어는 서늘하다. 우스운 단어도 있고, 시대가 너무 오래 묻어 있어 지금의 감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단어도 있다. 그 온도를 한번 느끼고 나면 단어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수어 공부를 하면서 단어를 외우는 동시에 그 뒤편을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왜 이런 손 모양일까.
왜 여기에서 저기로 움직일까.
이 작은 동작에는 어떤 사람들의 일상이 남아 있을까.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나는 그렇게 단어와 인사하는 편이 좋다.
뜻부터 묻고 돌아서는 것이 아닐라, 어디에서 왔는지까지 물어보는 것.
그렇게 알고 난 단어는 더 이상 외워야 하는 하나의 동작이 아니라, 오래전 누군가가 바라본 세상을 잠시 빌려보는 일이 된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