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물로 돌아가는 사람

by지후트리
수어그림_여행.JPG수어그림 <여행> / 지후트리 / 2017



나는 두 번이나 물에게 잠식당할 뻔했다.


엄마와 아빠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인지 아빠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유난히 바닷물 속의 장면들이 많다.


아빠가 포항에서 일하셨을 때 우리 가족도 잠시 포항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포항의 바다에서 숭어 낚시를 하고, 바다수영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정확히 어느 바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영을 잘하지 못했던 엄마는 나를 보호한답시고 내가 끼고 놀던 튜브에 매달렸고, 엄마의 두 다리는 모터처럼 열심히 물을 저었다. 우리는 분명 엄마의 발이 닿는 곳에서 모래사장과 나란히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모래사장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옆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바다 깊은 곳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당황한 엄마가 조금씩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어린 나에게도 그 긴장감이 미세하게 전해졌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엄마는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를 발견한 아빠가 수영을 해서 왔다.


"괜찮아. 지금 썰물 때라 뒤로 밀려나간 것 같아."


본인이 왔으니 이제 모래사장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내가 물속에서 발이 닿지 않는 공포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몇 년 뒤, 나는 다시 한번 물속에서 그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여전히 친구로 지내는 아이와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다. 친구는 워낙 소셜 활동을 열심히 하는 아이여서 동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시간이 되는 애들이 죄다 물놀이를 하러 나와 있었다.


바다에서의 경험 이후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 늘 얕은 곳에서만 놀았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가 놀고 있는 쪽이 훨씬 시원하다며 이쪽으로 와보라고 했다. 들어가지는 않고 신나게 노는 친구를 한참 구경하고 있었는데, 잘 놀던 친구가 갑자기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쥐가 난 모양이었다.


하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가 아니면 친구를 건져낼 사람이 없었다.


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지 못한 채 일단 뛰어들었다. 친구보다 내가 조금 더 크다는 사실 하나가 그 순간 나에게는 꽤 대단한 패기였던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은 키가 조금 크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는 다행히도 나를 물속 깊숙이 밀어 넣는 도움닫기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그녀를 건져냈고, 나는 대신 알래로 가라앉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수경도 없이 물속에서 눈을 떴다. 내가 얼마나 깊이 가라앉아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위쪽으로 일렁이는 빛이 보였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몸에 힘을 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위로 떠올랐다.

저세상 가는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왔다. 친구도 살았고 나도 살았다.

대신 그날 이후 내게는 극심한 물공포증이 생겼다.

누군가 "물놀이 가자"고 하는 말조차 폭력적으로 들렸다.

스무 살 이후 바다에서 제대로 물놀이를 한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 뒤로 나는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 내 몸 전체를 온전히 담그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렀다.


30대 중후반이 되었을 무렵, 뜻밖의 사람이 나를 다시 물 앞으로 데려왔다. 당시 호감이 있던 사람이 같이 수영을 다니자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 수영장에는 라이프가드도 있고, 강습 선생님도 있고, 내 뒤에는 나를 보고 있는 수강생들도 있으니까, 설마 여기서 물에 빠져 죽기야 하겠어. 생애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몸을 어떻게 띄우는지도 몰랐고 숨을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얼굴을 물속에 넣는 것부터 답답했고, 발이 바닥에서 떨어질 때마다 오래전 바다와 계곡에서 느꼈던 감각이 몸 어딘가에서 되살아났다.


함께 수영을 시작했던 그는 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참고하면 좋을 영상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물을 극복한 건 결국 나였다. 다만 내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첫발을 만들어준 것은 사람이었다.


조금씩 자율학습을 하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우아하게 자유형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사실 나는 거기까지만 배우고 그만두려고 했다. 평영과 접영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생각했다.

'내가 이걸 배워서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굳이 해야 하나?' 결국 포기했고 한 해가 지나갔다.


수영강습은 그만두었지만 물 자체를 떠나지는 못했다. 종종 일일입장권을 끊어 자유수영을 하러 갔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 좋았다. 한때는 나를 삼킬 것만 같았던 물이, 이제는 내 몸을 가볍게 받아주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올해 여름, 또 다른 귀인(?)이 나타났다.


나에게 호감이 있는 연하남이 어느 날 자신의 일상 루틴을 알려주다가 우리가 같은 수영장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같은 반에서 수영을 다니면 좋겠다며 나에게 수영을 권했다.


마침 나 역시 더운 여름을 수영으로 이겨내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잘됐다 싶었다.


다시 수영을 등록했다.

우리는 같은 강습반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대에 수영을 한다. 어느덧 결석 없이 2주 차에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배우는 것이니 기초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기초반에 등록했는데, 자유형을 하는 내 모습을 본 선생님이 나를 초급반으로 강제 승급시켜 버렸다. 초급반에서는 자유형과 배영은 기본이고, 평영, 접영, 한 팔 접영을 배운다.


기초반에서 수영하는 나를 본 그가 말했다.

"누난 이번 달만 기초하고 다음 달에 바로 초급 가셔야겠던데요."

"이미... 초급반으로 강제 승급 당했어."

"역시~"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두세 달만 열심히 하면 중급반에서 만나지 않을까요. 천천히 오세요. 저도 아직 실력이 저조해서... 멋진 모습 보여줘야 하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나의 도전정신을 건드렸다.

중급반까지 가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에 얼굴을 집어넣는 것조차 무서워했던 사람이 이제는 다음 반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진도가 빠른 편이다.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정밀하게 교정해 주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결국 스스로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요즘은 평영 발차기를 시작했다. 발목 가동성이 좋지 않아 연습이 많이 필요하고 발차기와 호흡의 정확한 타이밍도 익혀야 한다. 그래서 자꾸 찾아보고, 물속에서 실패하고, 다시 해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삶에서 물이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을 좋아했다가 무서워했고, 한 사람을 통해 다시 물과 친해졌다가 한동안 멀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물 앞에 섰다.


돌이켜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이 있었다.

나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아빠가 있었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든 어린 내가 있었다. 오랫동안 물을 피하며 살아온 나에게 다시 한번 들어가 보자고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느슨해진 나에게 이번에는 더 멀리 가보자고 자극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계기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내가 준비를 끝낸 다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예고도 없이 사람이 나타나 한마디를 건네고, 그 한마디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용기 역시 언제나 혼자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 먼저 물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 건넨 "괜찮다"는 말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여기까지 와보세요"라는 손짓 하나가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물론 그 손을 잡고 실제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예전의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생각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이나 피할 수 없는 사건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연히 내 앞에 도착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이 내 삶의 방향을 조금 틀어놓을 때,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우연을 운명이라 믿을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삶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다면 한 번쯤은 그 반복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물이었다.

두 번이나 나를 삼킬 뻔했던 물.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 물로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올 때마다 누군가 있었다.

이 정도면 수영은 내게 운명이라고 한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평영도 배우고, 접영도 배우고, 언젠가는 중급반에도 가보고 싶다. 물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한때 두려움 때문에 닫아 버렸던 세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다.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서웠던 기억을 가진 채로도 다시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용기의 시작에는 가끔 사람이 있다. 우연히 나타나 손을 내미는 사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 그런 인연을 만났을 때 이제는 너무 오래 망설이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내 쪽으로 보내온 계기를 알아보고, 일단 한번 따라가 보는 것. 나는 그것을 운명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수영을 계속해야겠다. 이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수영이 아니라, 두려워했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방법인지도 모르니까.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