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딸

by지후트리
IMG_2994.JPG수어그림 <가족> / 지후트리 / 2013



시간이 흘러도 상처로 남아 있는 말이 있다.

"과부 딸이랑 놀지 마"

그 말은 아이에게 하기엔 너무 잔인했고, 어른이 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나는 곧바로 받아쳤다.

"저도 아줌마 딸이랑 놀기 싫거든요."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모욕이라는 건 알았다. 더 억울했던 건, 그 말이 우리 엄마를 설명하는 말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과부가 맞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그 한 단어로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나를 키워냈고,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버텨냈다. 세상이 쉽게 붙어 버린 이름 하나보다 훨씬 크고 훨씬 단단한 사람이다. 내가 살아오며 만난 누구보다 씩씩했고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날 이후 엄마를 감싸고 있던 생의 온도는 모두 잿빛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에도 초점을 두지 못했고, 숨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나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장례식장 한쪽에는 아빠의 흑백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손님을 맞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슬픔은 분명 그곳에 있었지만 장례식장은 이상할 만큼 부산스럽고 시끄러웠다. 가끔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에는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한창 유행이었다. 혹시 이것도 나를 속이기 위한 거대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곧 아빠가 웃으며 나타나 "속았지?" 하고 말해주지 않을까.

어린 나는 현실을 믿지 못한 채 그런 상상만 반복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엄마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딸, 같이 봐야 할 게 있어."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조용한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시간마저 멈춰 있는 것 같은 곳.

영안실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은 채 기다란 직사각형 앞까지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아빠가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발걸음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어린 나도 본능적으로 알아버렸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아빠한테 인사하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아빠는 두 눈을 완전히 감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바라볼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아빠의 얼굴에 손바닥을 올렸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웠다.

아빠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어린 나는 그 온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

" 딸, 아빠 안녕히 가시라고.. 우리 같이 눈 감겨드리자."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아빠의 눈을 천천히 감겨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눈꺼풀이 닫히는 순간, 왼쪽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마치 마지막까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마치 끝내하지 못한 인사를 대신 건네는 것처럼.

그 눈물은 아빠의 마지막 작별인사였고, 나는 그제야 아빠를 보내주는 법을 배웠다.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과부라고.

하지만 내게 그 단어는 결핍이 아니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했고, 가장 깊은 상실을 견뎌냈으며, 어린 딸을 홀로 키워낸 한 사람의 역사다. 그래서 누군가 "과부 딸"이라고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 멋진 사람의 딸이니까.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