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속도

by지후트리
수어그림_습관.JPG수어그림 <습관> / 지후트리 / 2017



아침이 조금 달랐다.


요즘은 꿈을 잘 꾸지 않았는데 며칠째 꿈을 꾸고 있다. 이상하게도 꿈을 꾼 날은 몸은 개운하지 않은데 눈은 일찍 떠진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밥을 챙겨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방을 정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시 메모장에 옮겼다. 수어 단어를 공부할 자료를 챙기고, 바카라도 넣고, 노트북도 넣었다. 릴스를 올려야 한다는 것도 체크했다. 별것 아닌 준비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이 하루의 방향을 결정해 주기도 한다. 습도가 평소보다 낮아 걸어보기로 했다. 날씨를 믿고 걷기 시작했지만, 결국 한여름의 햇살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다음부터는 버스를 타거나 해가 지고 난 뒤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교훈 하나를 얻었다.


창작자는 가끔 작품보다 생활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집중할 수 있는 작업 공간에 도착하니 땀이 식기 시작했고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고 수어 단어를 공부했다. 밖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마음은 조금씩 차분해졌다.


공부를 하면 신기하게도 불안이 줄어든다.

특히 수어 공부할 때 그렇다.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진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문화가 손의 모양 안에 담겨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배우는 기분이다. 그 시간이 쌓일수록 내 무기는 조금씩 선명해진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sns의 유행도 그렇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그렇다. 예전에는 영상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 이제는 이미지와 영상 글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형식으로 계속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따라가기 버거웠다. '이제 또 바뀌었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변한 것은 플랫폼이지 내가 가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전에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수어를 연구하고 공연을 만들고 글을 썼다. 방법만 조금 달라질 뿐이다. 한때는 sns를 정말 열심히 했다. 팔로워도 빠르게 늘었고 협업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예상보다 큰 악플을 경험했고, 어느 순간부터 계정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시절의 인지도를 아직도 손에 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좋았지'

그 생각이 오히려 다음 걸음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만들어 왔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다시 답은 하나였다. 계속 만드는 것.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 수어를 그리고, 손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여기에 내가 가진 유머를 조금 얹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안정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 안심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계를 위한 일과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일을 뒤바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주말은 하나의 취미처럼 즐기고, 평일은 내 작업실의 대표처럼 살자. 콘텐츠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연구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생각하자. 이제는 그렇게 다시 살아가고 싶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비교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배움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순간적인 질투는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내 장점은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움직인다. 조금 쉬었다가 또 걷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계속 걸을 것이다. 창작자는 결국 오래 걷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언어를 오래 사용했다는 사실과 언어를 깊이 이해한다는 사실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는 짧은 설명만으로도 구조를 이해하고, 누군가는 충분한 맥락이 있어야 이해한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다. 논쟁을 피하기보다는 대화를 선택하고 싶다. 배울 것은 배우고, 틀린 것은 토론하며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덜 헤매도록 내가 먼저 길을 닦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배들에게는 겸손하게 배우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거창한 성과는 없었다. 스토리를 정리했고, 웨이트 운동을 했고, 수어 단어를 외웠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하루가 가장 중요하다.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실행 하나.

결국 사람을 멀리 데려가는 것은 재능보다 회복탄력성이고, 한 번의 성공보다 다시 시작하는 힘이라는 것을 오늘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