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가지가 된다

by지후트리
IMG_3779.JPG수어 그림 < 모순 > / 지후트리 / 2026


어떤 글을 블로그에 올릴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싶기도 하다. 요즘은 결과보다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무엇을 만들었는지보다 어떻게 생각했고, 무엇을 지나왔는지를 궁금해한다.

참으로 수다스럽다.

몇 시간째 키보드를 두드리며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적어 내려가는 내가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어이가 없다.

그러다 문득 화면 속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면서도 어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력이 조금 떨어진 걸까. 조만간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받아봐야겠다. 다행히 야맹증은 없어 밤길을 걷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눈동자가 밝은 사람들은 빛에 더 민감해서 선글라스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내 눈도 아주 밝지는 않지만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이다. 고등학생 때는 그 눈동자 때문에 선도부 선생님께 렌즈를 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렌즈는 내게 어려운 물건이었다. 하나 끼우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렌즈 빼."

선생님 앞에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제 원래 눈인데요."

렌즈를 빼는 시늉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선생님은 그제야 내 눈동자를 믿어주셨다.

생각해 보면 그런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물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작은 조각들이다.


자우림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기억 하나에서 시작됐다.

중학생 때부터 친했던 한 친구가 있었다. 무엇이든 곧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노래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고, 사진도 잘 찍었다. 포토샵도 능숙했고, 꿈미는 감각도 남달랐다. 늘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반대로 나는 아주 촌스러운 아이였다. 그 친구가 알려주는 것들을 하나씩 따라 해 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화장도 그 친구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 제대로 배웠다.

우리는 노래방을 자주 갔다.

그 친구는 갈 때마다 자우림 노래를 열창했다.

' 천사의 미소처럼.'

처음 김윤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렇게 독보적인 목소리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하하하쏭'처럼 유쾌한 노래도 좋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속에는 조금 슬픈 노래들이 더 오래 남았다.

그중에서도 '샤이닝.'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서울에 갓 상경했던 스물둘의 내가 떠오른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방향을 잃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도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닐지 모른다.

여전히 목마르고, 여전히 배우고 싶고, 여전히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산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도 있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질문했다면, 지금은 더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질문한다. 질문의 형태와 밀도, 그리고 방향이 조금씩 달라졌다.

스물두 살의 내가 상상했던 서른아홉의 나는 아니다.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앞으로의 내가 궁금하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고여 있는 사람보다 흐르는 사람에 더 가깝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슬픔보다 아쉬움이었다.

'그 삶이 너무 아깝다.'

조금만 더 우리 곁에 머물러 주셨다면, 엄마의 곁에 조금만 더 계셔 주셨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가끔은 지금의 나에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박지후, 너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안으로 녹여내는 사람이면서도 왜 아직 더 활짝 피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러다 문득 나무를 떠올린다.

나무는 하나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스스로 미리 정해 놓은 형태에 맞추려 애쓰지도 않는다. 하늘로만 뻗어 오르려 하기보다 옆으로 가지를 내고, 빛이 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바람이 부는 쪽을 견디며 자란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형태를 바꾸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의 본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끌어안는 사람.

일관된 모습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배우는 사람.

더 높이 올라가기보다 더 넓게 뿌리내리는 사람.

그래서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작은 그늘이 되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찬란하게 피어나서, 내가 가진 이 따뜻함과 애잔함이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아직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계속 자라고 있는 사람이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