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버튼을 누르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고민 끝에 버튼을 눌렀다.
BTS 버전의 '아리랑'을 수어 퍼포먼스로 만들어 올린 영상은 예상보다 멀리 흘러갔다.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보았고, 공유하고, 반응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계정에 다시 움직임이 생겼다. 나름의 바이럴이었다. 성공적인 릴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기준이다. ) 그런데 막상 하나의 영상이 잘되고 나니, 성공보다 먼저 지난 시간의 실수들이 떠올랐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차이와 반복이 있을 뿐이다. 어떤 실수는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만, 어떤 실수는 오랜 습관이 된다. 나의 가장 긴 실수는 어쩌면 실패할까 두려워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숨었고,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발표를 미뤘다.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가능성을 줄이는 대신, 나의 가능성까지 함께 줄여버렸다. 실패와 실수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실패는 시도한 일이 기대한 결과에 닿지 못한 것이고, 실수는 그 과정에서 방향이나 판단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실패에는 움직임이 있지만, 내가 반복했던 실수에는 멈춤이 있었다.
아리랑 영상이 잘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과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 전의 내가 좋아하던 방식으로 다시 움직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내가 오래 다뤄온 수어를 연결하고, 설명보다 몸과 이미지로 먼저 꺼내놓았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물론 한 번의 성공이 지난 실패를 모두 보상해주지는 않는다. 다음 영상은 기대만큼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 공들인 작업이 알고리즘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다시 실망하거나 방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반응이 없다는 것과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것보다 조금 늦게 답을 얻는다. 어떤 작업은 바로 사람들에게 닿고, 어떤 작업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미를 가진다. 실패처럼 보였던 시도가 다음 작업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잘못 선택한 방향이 오히려 내가 가야 할 곳을 선명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삶의 근본적인 움직임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걸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일 수도 있다. 내게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것 같다.
아리랑 영상 이후로 하고 싶은 작업들이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아 실행이 늦어지는 것이다. 의상과 배경, 촬영 장소와 영상미를 고민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필요하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다시 나를 멈춰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당분간 실패를 피하는 사람보다 실수를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잘되지 않은 작업은 고치고, 부족한 영상은 다음 영상에서 보완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성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작업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다.
실수는 움직였다는 증거다.
실패는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방식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한동안 나는 안전한 동굴 속에서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조금 서툴고 조금 틀리더라도 밖에서 계속해보려 한다. 잘된 하나의 영상은 내가 정답을 찾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증거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