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by지후트리
수어그림_평화-페인팅.jpg수어 그림 < 평화 > / 지후트리 / 2020

5월의 기록 중.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를 무사히 마무리 짓고 5월을 맞이했다.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뒤풀이 자리, 그곳에서 오간 대화들은 내 마음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문득 내가 사물을, 그리고 세상을 입체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잠시 놓아버렸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흐르듯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내게 간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을 향한 불씨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했다. 다만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굳이 거창한 목표를 세워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다.

이날 대화의 화두는 '미술계 내부로 들어온 퍼포먼스 영역의 명암'이었다. 공연을 올리기까지 수많은 리허설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미술관 측에서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늘 제자리걸음인 지원금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예술계의 고질적인 문법이다.

흔히 속담에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한다. 내가 상대에게 온당한 예의를 갖추어야 그에 걸맞은 대접을 되돌려 받는다는 뜻이다. 예술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나의 온전한 창작물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예술가들은 영혼을 갈아 넣는 노고와 물리적인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창작자가 먼저 자신의 땀방울과 진심을 무대에 바쳤다면(가는 말), 이 생태계를 지탱하는 미술관과 슬롯 역시 그 노력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성숙한 이해와 정당한 대가로 보답해야 마땅하다(오는 말).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남이 밤을 새워 일구어낸 창작물을 손쉽게 무단 복제하여 무임승차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고뇌와 눈물을 날로 삼키며 이득을 취하는 그 불손한 태도는, 예술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비겁한 행위다. 정당한 노력 없이 '오는 말'의 달콤함만 누리려는 이기심은 결국 창작의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부조리한 점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를 향해 그저 말로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무력하다. 세상의 일방적인 요구와 약탈에 순응하지 않고, 글로 풀어내고 작업으로 증명하며 작품으로써 단단하게 표출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와 실연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자 가장 예술적인 저항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퍼포먼스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각자가 이 장르를 개념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파괴해 나가는지 근본부터 치열하게 공부해 볼 시점이다.

돌아보면 모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저마다의 장벽 안에서,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이것은 이래야만 하고 저것은 저래야만 한다'는 자신만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화의 말투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극명하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 뾰족한 시각차의 경계들이야말로 이 슬롯를 고이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원동력이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다만 불필요한 피로감을 줄이고 내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제는 취향의 결이 맞지 않는 이들에게 굳이 억지로 다가서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입체적인 시선을 되찾고, 내 안의 창작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5월의 시간은 충분히 밀도 높게 흘러갈 테니까.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