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요즘 세대'라 불리는 이들과 소통하며 일터에서의 관계와 태도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애초에 기본적 예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대화 자체를 삼가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겉보기에 예의 발라 보이는 이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방어 기제다.
자신의 업무적 과실을 지적받았을 때,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기보다 변명부터 늘어놓기 바쁘다. 지적의 본질은 '업무적 귀바카라사유'에 있다. 즉, 프로세스의 불이행을 묻는 것이다. "그 변명은 수용될 수 없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어도, 그들은 본인의 의도가 순수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과실의 본질보다 자신의 입장만을 정당화하려는 일종의 '확증편향'이자 공적 바카라임감의 결여로 다가온다.
평소 수평적이고 친근하게 대했던 배려가 도리어 공과 사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 것은 아닐까 회의감이 든다. 결국 철저한 업무분장과 사적 감정을 배제한 드라이한 소통만이 답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또 다른 직원의 답변은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매니저로서 경영진과 스태프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기에 업무적 긴급 상황을 대비해 사장님께 전달받은 그의 번호로 내 소개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단기 헬퍼로 일하더라도 노동을 대가로 임금을 받는 비즈니스 관계라면, 서로의 연락처를 저장하는 것이 공적관계의 기본값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나의 상식을 비웃듯 당돌했다. "DM으로도 소통하고 문자로도 연락이 오가니, 굳이 번호를 저장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른바 'Z세대' 혹은 '알파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연락처 저장은 사적 영역으로 진입을 허용하는 행위이며, 이들은 sns를 통해 필요할 때만 연결되는 '느슨한 연대'식 소통에 훨씬 익숙하다고 한다.
그들의 개인적 소통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터에는 일터만의 공적 리터러시와 규칙이 존재한다. 플랫폼 중심의 파편화된 소통에 익숙한 이들은 공적인 업무 공간에서도 맥락 저하를 겪으며, 업장의 룰보다 본인들의 편의를 우선시한다. 업장의 소통 방식을 따르는 것이 조직 구성원의 최소한의 의무이기에 결국 따끔하게 다그쳤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다. 이들의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대체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서부터 통제해야 하는가. 오늘날 관리자의 어깨는 그들의 변명을 받아주는 것보다 이 거대한 세대 간의 인식의 격차를 메우는 일로 더욱 무거워진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