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마음을 훔친 하루

by지후트리


수어 그림 < 훔치다 > / 지후트리 / 2018

기분 좋은 햇살과 적당한 바람이 부는 어린이날, 나는 나 자신을 산바카라시켜 주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나가는 외출이 아니라,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달래며 동네를 느리게 걷는 이 시간은 그 자체로 나를 향한 다정한 위로가 된다. 평소 걷는 행위를 명상이자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하는 수행의 시간으로 여기는 내게, 오늘처럼 맑은 하늘 아래를 걷는 일은 일상의 감각을 깨우는 소중한 의식과도 같다.

최근의 나는 '스토리'라는 단어에 부쩍 천착하고 있다. 삶의 서사가 단단하고 강력해야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보는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변 이들의 소식을 통해 뼈아프게 배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닿기 위한 전제 조건은 결국 나를 지탱하는 체력에 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처럼, 수영과 산바카라으로 다져진 몸과 마음이 있어야만 나는 비로소 자유롭게 꿈꿀 수 있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한 여행은 시간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절감하게 하며 내 마음을 온통 뺏어갔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에, 엄마에게 수영과 웨이트를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나 짧게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다짐은 그 유한함 속에서 길어 올린 애틋한 조각들이다. 가족을 향한 이 깊은 애정은 내가 더 열심히, 그리고 장하게 오늘을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든든한 동력이 된다.

몇 해 전에 선물 받았던 '컬러의 일'이라는 바카라을 꺼내와 읽었는데, 잠시 잊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다시금 훔쳐갔다. 괴테가 색이론의 권위자 중에 한 명이었단 사실에 새삼 놀라며, 과거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며 가슴 설레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했다. 색채심리학을 훑으며 마주한 영감은 오늘 내가 나 자신에게 선물한 미디엄 마젠타색 물감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남았다. 해가 좋은 김에 카메라에 담아 온 주변의 색깔들과 영상들은 이제 나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되어 일상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오늘의 빛깔들을 확인하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정해진 루틴을 지키고 소박한 재료로 식탁을 채우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늘 가까이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기로. 거창한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 오늘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마주친 사소한 풍경과 색채들이 어느새 내 마음을 훔쳐 더 풍요로운 내일을 꿈꾸게 한다. 이제 충분히 충만해진 마음으로, 오늘의 남은 시간도 나답게 채워나가려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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