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한계가 곧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한계

by지후트리
수어 그림 <지문자 ' ㅅ,ㅏ, ㅇ,ㅠ' - 사유 > / 지후트리 / 2017


한 계절의 끝자락이 결국 뒷모습을 보이며 물러간다.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가버리고 나니, 목표했던 체중 감량에 완벽히 도달하지는 못했어도 그 근처 어디쯤 발을 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공연 당일의 컨디션을 가장 방해할까 염려했던 생리 주기가 마침 주말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수영 수업을 빠져야 하는 아쉬움보다, 무대 위에서 가장 맑은 정신과 가벼운 몸으로 관객을 마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이토록 이 주기가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지금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지난 주말, 스트레스에 못 이겨 예상보다 많은 테킬라를 마셨던 기억이 스친다.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가끔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든다. 일하는 방식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의 결이 다를 때,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창작보다 훨씬 고되다. 나는 무대 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출연진이지, 전체 판을 짜고 행정적인 바카라임을 지는 기획 연출자가 아니다. 적절한 보상이나 상호 합의 없이 기획의 영역까지 도맡아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욕심을 미화하거나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관행은 지양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명확한 계약과 계획 아래 건강한 협업을 지향하려 한다. 이제는 그간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내게 주어진 감정선을 정리하며 오로지 무대 자체에만 몰입할 시간이다.


최근 관람했던 사운드 공연은 나에게 예술 생태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남겼다. 고음악과 전자음악의 결합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매 파트마다 흐름을 끊는 설명조의 영상 장치들은 몰입을 방해했다. 관객이 소리의 잔향 속에 체류하며 사유할 시간을 주지 못한 채, 다음 세션으로 급하게 넘어가는 전개는 아쉬움을 자아냈다. 특히 예술가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듯 정의 내리는 태도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한국 공연계의 고질적인 관행처럼 굳어진 '친절한 설명'이나 '고상해 보이려는 수사'들은 오히려 예술적 실험의 틀을 가두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공연은 공연 그 자체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여백을 열어두어야 한다. 아티스트의 언어적 설명은 가장 마지막까지 아껴두어야 할 장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더 많은 공연을 서칭 하고, 장치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레이어를 만들어가는 작업 방식을 고민하게 했다.


단어의 한계가 곧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한계라는 말처럼, 요즘은 언어의 힘을 새삼 느낀다. 안규철 작가님의 글과 목정원 작가님의 문장들을 빌려와 나의 언어를 새롭게 갈아입으려 한다. '잔향, 가변, 합성' 같은 단어들이 내 안에 머물러 있다. 매일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품고 일기를 쓰며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도 좋겠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