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도 자음과 모음이 있다

by지후트리
한글날_지문자1.png


글자가 손끝에서 태어나는 순간.

한글은 참 신기한 문자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한글을 손으로 쓰는 또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

종이도 연필도 필요하지 않은,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바로 한국수어의 지문자다.

지문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손의 모양으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손가락을 펴고, 접고,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글자를 표현할 수 있다. 처음 지문자를 배웠을 때는 손이 글자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잡는 데 사용하던 손이 어느 순간 문자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한글날을 맞아 지문자로 '한글날'을 써보았다.

하나의 손 모양이 하나의 자모가 되고, 여러 손 모양이 모여 하나의 단어가 된다. 종이 위에 글자를 적는 대신 손의 모양을 그려 넣었다. 보라색 바탕에 초록색 손들을 나란히 놓으니 익숙한 한글이 낯선 그림처럼 보였다. 이렇게 바라보면 글자는 반드시 반듯한 획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손가락의 방향과 관절의 움직임에도 글자가 숨어 있다.


한글을 생각하면 세종대왕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말을 글로 남길 수 있도록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글자가 누군가의 깊은 고민과 오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새삼 고마워진다.

훈민정음의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기본 모음에는 하늘과 땅, 사람을 상징하는 원리가 담겨 있다. 말이 나오는 몸을 관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문자에 담았다는 점이 내게는 특히 흥미롭다. 나는 수어그림을 그리면서 손의 형태를 오래 관찰한다. 손가락 하나의 각도, 손바닥이 향하는 방향, 손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몸의 모양들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이전에 그린 수어그림<한글날>에서는 태극의 붉은색과 푸른색을 가져왔다. 한글과 날을 뜻하는 수어 동작을 화면에 담고, 손의 형태는 일부러 각지고 뾰족하게 표현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오래 깎고 다듬는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마치 조각칼로 단단한 재료를 조금씩 깎아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것처럼.

이번 지문자 그림은 그 작품과 조금 다르다. 수어 단어의 움직임을 그리는 대신, 손으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적었다. 같은 '한글날'이지만 손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했다.

내게 한글은 오래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진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 선물을 나는 손으로 다시 펼쳐보고 있다. 누군가는 한글날을 글씨로 쓰고, 누군가는 소리 내어 읽는다. 나는 오늘 손가락으로 한글날을 써본다. 손으로 쓴 글자가 그림이 되는 순간을 오래 바라보면서.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