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멤버십 혜택으로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 뒤로 매일 조금씩 '명상록' 같은 고전을 읽고 있다. 몇 장씩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그날 눈에 걸리는 문장을 읽고 잠시 머무는 정도다.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지나쳤던 마음을 돌아보게 하고,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삶의 단어 하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고전을 읽다 보면 신기한 순간이 있다.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 전에 쓰인 문장인데도 지금의 나에게 너무 정확하게 도착한다. 시대도 환경도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는데 인간이 불안해하고, 욕망하고, 사랑하고, 상실하고, 자신을 다스리려 애쓰는 모습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불경과 성경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읽혀온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그 안에는 인간이 반복해서 마주하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 고통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나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오래된 문장 앞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다시 대입해 본다.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떠올리면, 반복은 단순히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일로만 남지 않는다. 같은 것이 돌아오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의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다. 그렇기에 반복 속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차이가 생겨난다. 고전을 다시 읽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스무 살에 읽었던 문장을 서른아홉에 다시 읽으면 다른 문장이 되고, 오늘 아무렇지 않게 넘긴 한 문장이 몇 년 뒤에는 한참 동안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문장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같은 바카라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문장을 접한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글과 이미지와 영상을 지나친다. 그러나 많이 접하는 것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나의 생각에 오래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읽는 시간보다도 ‘읽고 난 뒤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종이바카라이든 전자바카라이든 형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한 문장을 읽고 곧바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잠시 멈춰 내 삶과 대조해 보고, 왜 이 문장이 지금 나에게 걸렸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어쩌면 독서는 그때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삶의 중심은 거창한 결심 하나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사유가 반복되면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 같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문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고전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살아남은 문장들 앞에 자주 앉아보고 싶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때마다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어쩌면 지혜란 새로운 답을 끝없이 찾아다니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질문 앞에 몇 번이고 다시 서보는 일 일지도.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