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리뷰
어릴 적 놀이공원에 간 기억을 떠올려보자. 지나가면서 군침돌게하는 소떡소떡, 츄러스, 솜사탕 그리고 걸어 다니는 귀여운 만화캐릭터들까지. 어린 동심의 시선에서 이 모든 건 그저 파라다이스 세상,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 디즈니랜드의 표어 같은 곳이다.
꿈, 사랑, 행복의 나라 롯데월드,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의 미국판이랄까. 맛있는 걸 마음껏 먹으며 놀이기구 타는 순간은 아이에게 슬롯에 찌든 부모와는 차원이 다른 도파민이다.
근데 만약 돈이 없는 상황에서 그곳에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찌어찌 입장권은 구해서 들어왔는데 길거리 맛있는 음식하나 못 먹고, 놀이기구 하나 못 타고(남들 타는 모습만 구경해야 됨. 귀에 남들 환호성만 들리겠지), 그야말로 고문이 따로 없다. 그 열패감과 상실감은 어린아이의 동심에서는 몇 배 음의 레버리지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팔 것이다.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될지도. 디즈니랜드 외곽 허름한 모텔 ‘매직 캐슬’에 사는 아이들이 그렇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디즈니랜드를 애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생활고에 시달린다. 이름과 달리 매직캐슬이 아닌 화려한 교도소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파이프라인 없는 자유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자유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고졸백수에 취업준비생을 떠올려보면 된다. 남들 다 출근하는데 집에 멀뚱멀뚱. 돈은 없는데 고정비는 계속 나가고. 근데 또 뭘 하든 그 누구도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자유로운 그런 삶. 이 영화 속 주인공 핼리처럼 본인 아이는 방치되고, 생활비 목은 조여 오고.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삶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공통된 전제조건을 만든다. ‘어른이 만들어낸’이 처참한 현실. 그리고 그 상황에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놓인 아이들의 삶. 어린아이들은 아무 죄 없이 그리고 선택권 없이 그런 삶을 온전히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세계와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그린다. 타인이 본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없이. 아니, 인지조차 못할 테지 애기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그들은 처참한 현실을 직감하고 그들의 느낌과 언어로 삶을 받아들이나, 어른의 단어로 말하지 못할 뿐.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직관적인 시선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현실을 그린다.
영화는 이렇게 보란 듯이 오프닝부터 러닝타임이 끝나는 마지막 결말까지 어린 동심의 세계, 아름다운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배경을 자칫 불편할 정도로 더 직관적으로 그려낸다. 파스텔톤의 모텔, 널찍한 도로, 뜨거운 여름, 햇빛, 노을, 수영장, 소프트 아이스크림까지. 가난을 연민으로만 치환하려는 대중들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랄까.
플로리다의 허름한 모텔에 사는 핼리와 그녀의 딸 무니. 미국엔 이런 임시숙소를 장기거주하는 저소득층이 많다. 디즈니월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와 정부에서 저소득층에게 일자리알선 및 거주지제공을 목적으로 한 두 정바카라 이름이 모두 ‘플로리다 프로젝트’. 밝은 취지와 불편한 진실의 언밸런스 조합. 제목부터 신선하게 풍자가 들어간다. 매직캐슬에,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감독은 대중이 지루할 틈이 없도록 슬롯풍자적 요소들을 군데군데 숨겨놓았다. 사실 ‘플로리다’ 지명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 많을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 마이애미가 있으니.
핼리는 간간히 향수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미혼모다. 화려한 디즈니랜드 배경을 등지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엄마 핼리는 어느 날, 보조금 마저 끊긴다. 온라인 게임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 자의든 타의든 온라인 게임이 없는 그녀는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거나 무바카라임하지도 않다. 향수를 팔거나, 이웃 애슐리가 일하는 가게에서 와플을 얻어먹고,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훔쳐 어떻게든 무니를 바카라임진다. 이 디즈니랜드 외곽 모텔에 사는 이웃들도 미래가 없는 하찮은 인생이라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수리공을 한다거나, 일용직으로 간신히 생계를 (성실히) 이어나간다. 그중에 핼리만 조금 더, 상황이 안 좋게 가난할 뿐이다.
애 딸린 젊은 미혼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에서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 미혼모의 처절한 현실을 잔인하게 노출시키면서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꿈꾸는 인물의 대조적 서사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엄마는 나중에는 성매매까지 손을 대면서 아동국의 신고로 잡힌다.
그래서 무니는 강제로 입양되어야 하는 상황까지 간다. 엄마가 성매매를 해서 아이의 생계를 바카라임지는 이 비극적 모성. 괴랄하다. 영화의 가장 큰 긴장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인만의 언어로 삶을 해석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오버랩된다.
무니에게는 단짝친구가 있다. 옆 모텔의 젠시. 모텔에 사는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를 방치했지만 그 덕분에 같이 놀면서 우정을 쌓아간 하나뿐인 단짝. 영화가 절정에 치달을 때 무니는 단짝 젠시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영화를 보는 대중에게 마지막 비수를 꽂는다.
넌 내 단짝인데, 이제 다시 못 볼지도 몰라
그리고 디즈니랜드를 향해 손을 잡고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영화에서 명백한 결말을 정하지 않은 건, 단순히 대중들에게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의미보다 결말을 정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이나마 현실의 비극성이 미화되어 새로운 희망을 남기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디즈니랜드 안의 새로운 세계는 누구로부터 구원받거나 도움받진 못하나 근거 없는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는 듯하다. 마치 마지막 피난처로 해방하는 느낌. 갑자기 바뀌는 화면의 속도가 이를 대변해 준다.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꽤나 감정이입을 해서 봤는데 확실한 건 어른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다르다는거다. 어른의 시선에서 볼 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겠지만, 사실 아이는 어렴풋하게나마 다 알고 있다는 것. 다만, 어른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무니가 낸시에게 마지막 건네는 대사만 봐도 이를 직감할 수 있다. 더 슬프다 어쩌면 어른의 언어보다도. 가식과 빙빙 돌리는 꾸밈의 관형사가 없으니.
한 가지 더 포커싱 되는 점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꼭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가난하다고, 돈이 없다 해서 삶이 꼭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거. 위 사진 속 아이들 삼인방은 본인들이 부모에게 하루 종일 방치된 사실도 모르고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저 재밌고, 맛있고, 즐겁다. 아이들의 불장난이나, 욕설, 비방도 사실 가난이라는 환경에 노출돼서 만들어진 인물을 감싸는 방어기제, 해프닝일 뿐.
어쨌거나 아이는 잘못이 없다. 모르니까.
슬롯풍자를 하는 영화는 대개 우중충한 배경, 위선, 빈부격차, 잔인함, 처절함을 나타내다가 어떤 명백한 권선징악적 결말로 시퀀스가 이동하나, 이 영화는 오히려 아이의 시선에서 모든 걸 그림으로써 천진난만함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매력이다. 무니 앞의 세상이 이미 바닥을 찍었으니 오히려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더 희망만 가득할 거라는 결말처럼. 이상하게 희망이 샘솟는다. 봐봐. 디즈니랜드를 향해 뛰잖아. 그건 무조건 행복을 향해 뛰는 거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아이 위주의 시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기서 어른은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차에 침을 뱉어도 몇 번 질타하고 끝이다. 어떤 상황이나 문제점에 근본적인 해결바카라을 제시히지 않는다. 영화애서 모텔 매니저로써 모든 사사로운 일을 다 맡아 충실히 본인의 일을 하는 바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젠시, 무니, 그리고 미혼모 핼리가 온갖 사고를 쳐도 그는 우직하게 그들을 보호한다. 소아성애자가 아이 곁에 가 허튼짓을 하려 할 때도 달려가 그들을 보호한다. 근데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핼리가 아동국에 잡혀가고, 무니가 입양되는 게 확정되는 그 시점엔 정작 아무런 대응을 하디 못한다. 방관할 뿐. 미혼모의 경제적 어려움, 법적문제, 아이의 교육문제 등 우리 보통의 삶에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처럼. 영화 <인턴>처럼 한국판 제작이 시급하다. 어쨌거나 침묵한다. 그래서 희망찬 결말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그리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는 어른들에게 말하고 있다. 세상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을 영화는 돌려 말한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아이를 지킬 수 없다고.
그걸 알고 있냐고.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더 바카라임감 있게 열심히 살아라고. 내 사랑하는 아이를 지키려면 최소한의 환경은 마련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바카라임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