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가 높아도 난 헤엄칠래

<악마는 프라다 2> 리뷰

by홍그리

회사를 무탈하게 잘 다니는 한 온라인 게임인이 있다.

확 튀진 않아도 나름 부서에서 동료 및 상사에게 인정받으며, 본인 할 몫은 다하는 근면성실한 직원이다.

연봉도 본인 또래 대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복지도 엄청나다. 회사에 이토록 자부심이 있는 이유는 어릴 적부터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굴지의 대기업답게 영어 성적은 기본이고, 다수의 인턴경력에, 온갖 자격증에, 높은 학벌에, 직무 배경지식까지 모든 걸 준비했기에 이토록 만족하며 충만한 성취감에 회사를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옆 직원이 할 말이 있단다. 본인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곧 퇴사를 할 거라고. 본인은 이직을 하니, 그동안 고마웠다고 한다. 지금부터 이 성실한 직원은 직전과는 상반된 심각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 옆 직원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이 온라인 게임에 강한 불만을 갖고 이직준비를 몰래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직에 성공해 내게 잘 있으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만 이 회사에 만족하고 있던 걸까. 내 인생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난 지금 내 길을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걸까? 도태되는 건 아닌가? 이미 안주해 버린 건 아닐까? 내 인생은 괜찮은 건가? 갑자기 불안이 엄습한다.


이별의 형태만 다를 뿐, 영화의 시작도 이와 같다. 주인공 앤디는 항 시상식에서 골든키보드상을 받는 도중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한다. 일을 잘해왔기에 상도 받고. 본인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도 상당한 그였는데 갑자기 해고라고? 시작부터 청중은 이해하기 어려운 반전에 맞닥뜨린다. 해고통보도 대면이 아닌 심지어 문자다. 이후, 해고마저 이렇게 편리해진 초연결슬롯에 정통 저널리즘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앤디는 강하게 풍자하고, 이는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진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이 풍자는 온라인상 큰 화제가 돼 이를 본 20년 전 패션잡지회사 런웨이에서 시니어 에디터로 앤디는 취업이 된다. 캬.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 아니었던가. 모두가 예상했지만 약간은 놀랍게도, 그곳엔 미란다가 여전히 편집장으로 잘 버티고 있다.


1편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스크린에서 비치는 미란다는 20년이 지난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해 현실과 적정한 타협선을 지키며 순해졌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패션잡지회사답게 패션에서의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지만, 정통적 종이잡지를 고수하는 방식 때문에 크게 쓸모없는 상징성만 남았다. 판매대수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 아니, 잠깐만. 요즘 누가 종이잡지 보나? 나도 정확히 15년 전 군대에서나 보던 맥심, 지큐 종이잡지가 마지막이었다. 손가락 스크롤 몇 개만 내려도 최신 유행 패션을 클릭 한 번으로 당일배송되는 그런 시대다.

이 변화된 시대상은 콧대 높고 악명 높은 ‘악마’ 미란다를 변하게 한다. 어쩔 수 없다.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그만의 아집은 회사전체를 망하게 할 수도 있거든. 디올 광고주에게 굽실대며, 직원들에게 쓰는 단어도 최대한 조심하지만 옆 비서에게 제지당한다.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는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이젠 이 바뀐 시대가 본인도 어느 정돈 두려울 테다. 야생에서 힘이 어느 정도 빠진 정상에서 내려온 숫사자랄까?

새로 등장하는 벤지라는 등장인물의 의도도 거대한 시대의 파도를 환기한다. 마치 현재의 AI혁명을 연상케 하듯, 일에 대한 진정성을 묵살하고 돈으로 해결하면서 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인수하고, 또 인수하고, 그렇게 기술을 합치고. 한 회사는 그 어떤 스타트업이 감히 견줄 수 없는 거대한 공룡이 된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상위 1% 기업 같은 것. 앤디와 미란다는 그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일자리의 위협을 느끼고. 결국 미란다에 우호적인 투자자로부터 회사를 살려내는 억지스러운 해피앤딩이 자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독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넌지시 건넨다.


‘난 대체 이 야생에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전편이든 속편이든 영화 제목이 ‘악마는 프라다’ 지만영화 혹 진짜 악마의 부재가 이 영화의 킥이다: 사실 악마는 없다. 미란다의 전작과 속편의 행동들은 패션업계의 편집장으로써 일에 대한 사명감과 애착이 있기에 그려진 ‘꾸며진 악마’ 일뿐이다. 사실 그도 순수한 꿈이 있고 열정 있는 보통 온라인 게임인일 뿐.

영화는 특별히 빌런을 정해 악마를 만들어 권선징악적 주제를 나타내지도 않고, (그러기엔 미란다와 앤디는 서로 시너지를 내며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 결말을 그린다) 기성세대와 신흥세대의 대립이라 해서 흑백논리적 시대상을 원색적으로 풍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모호한 그 경계선 상에 있는 불쌍한 현대인에게 위로와 연민 섞인 메시지를 건넬 뿐이다. 앞선 한 온라인 게임인의 예시처럼,


‘나는 이대로 잘하고 있는 걸까? 거대한 시대적 파도 앞에서 나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까?“


이 메시지를 뽑아낸 청중이 있다면 영화 등장인물에서 더 돋보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바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곁에서 미란다를 보조하는 나이젤이다. 그는 20년 전에 미란다에게 배신당했지만 속편에서도 미란다의 곁을 지킨다. 보다 못한 앤디가 나이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배신을 당했었는데도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그런 적은 이미 지난 20년간 수도 없이 많았어”


변화하는 삶을 대하는 방식은 누구나 제각각일 테다.

나이젤처럼 존버(존나 버티기)를 한다거나, 빠르게 본인 몸값을 올려서 갈아타거나. 옛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걸 빠르게 흡수하거나 변화된 시대에 제 역할을 고수하거나. 트렌드와 꼭 반대노선을 탔다해서 안주하거나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영화배경인 세계의 중심지 뉴욕에서 패션의 정통성을 지키는 하나의 자부심이 될 수도 있는 것. 반대로 새로운 걸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경험을 늘리고 한다 해서 트렌드의 거센 파도에 올라탄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을지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길 가는 온라인 게임인 한 명에게 한번 인터뷰요청을 해봐라.


“온라인 게임 왜 다니세요?”

“돈 벌려고요”


당연하다. 솔직하게 온라인 게임인은 돈이 전분데, 오히려 돈에 미쳐 이리저리 흔들리는 민들레홀씨가 잃는 게 더 많을지 모른다.


오히려 영화개봉 전부터 논란이 됐었던 앤디의 비서 동양인의 인종차별은 난 전혀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저 자르실 건가요?”

명문대를 나와 슬롯에 적응을 못하는 것처럼 비치는 중국인 진 차오(Jin chao)는 주인공을 보좌하는 비서로 나오나, 이것이 동양인을 향한 원색적인 인종차별로 보기엔 다소 확대해석이 아닐까. 제작진의 무지라던가, 그 등장인물이 명징하게 특정대상을 무시하는 의도로 보긴 힘들고 오히려 내가 아쉬웠던 건 화려한 배경 속 심지어 패션업계를 그리는 곳에서 그에게만 투박한 의상을 그린 것 사실 딱 그뿐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불편함을 단 1초도 느끼지 않았다. 학벌에만 집착하고 슬롯 붙임성이 없다는 그 대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 오히려 그 비서의 개인적 특성을 감독은 영화의 긴장을 낮추는 유희적 요소로 그린 게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갈 때 남는 메시지는 딱 하나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 그것이 느리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빛을 내는 복리 다. 결국 시대가 바뀌든 파도의 파고가 높든 말든 경제위기가 오든 그 사람들만 생존한다. 불편한 진실을 영화는 완곡하게 대중들에게 어필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매일 똑같은 거센 파도 속 감독은 그들을 더 원하고 있다. 제2의 앤디를 찾고 있다. 그들은 앤디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


제2의 숨은 전 세계의 앤디들은 오늘 아침에도 외친다. 매일 무섭게 바뀌는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괜찮다고. 나는 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온라인 게임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