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여덟 시를 앞둔 시간.
주방과 식탁 사이를 오가며 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배달해 온 치킨과 피자를 펼쳐 놓고, 잔 세 개와 젓가락도 가지런히 놓는다.
나는 지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온 터라 안주 삼아 삶은 옥수수를 준비하고.
남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미소를 짓는다.
지난 주말에 딸네 가족이 와서 미리 생일 파티를 했고, 오늘은 진짜 내 생일이라 가족끼리 다시 축배를!
무르익던 분위기에 찬물도 아닌 얼음 한 바가지를 내가 끼얹은 모양이다.
남편이 준 금일봉으로 주식을 샀노라고 했다.
남편 몫으로 조금 사 둔 대우** 주식이 파란불이라 단가를 낮추려고 추가 매수를 한 것이다.
생일 선물로 옷을 사라며 건네준 돈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달은 남편.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설명하며 이해를 구해 봤지만 언감생심이었다.
보다 못한 아들이 "엄마,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왜 아빠 마음을 몰라?"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고 받기만 하는 것이 늘 미안했던 아빠, 엄마 생일을 빌미 삼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건넨 돈인데, 그 돈으로 주식을 샀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느냐며, 혼쭐을 냈다.
아빠 마음 다 안다고 했더니 결과적으로 엄마는 아빠 마음을 모르는 것이라며 못을 쾅쾅 박았다.
나는 옷을 사고 싶지 않다.
장롱 안에는 몇 해째 한 번도 꺼내 입지 못한 채 계절만 여러 번 지나 보낸 옷들이 있다.
게다가 비싼 옷을 차려입고 갈 만한 곳도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애경사가 전부인데, 고가의 옷은 내게 과분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평소 입을 옷 하나는 사야겠기에 남편이 준 돈의 10퍼센트는 남겨 두었다.
내일 그 돈으로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하니 단단히 토라진 남편은 꿈쩍도 않는다.
"생일 선물이고 뭐고, 다시는 안 한다."
각오를 다지듯 서늘한 말을 남기고 남편은 등을 돌린 채 잠이 들었다.
가진 전부를 내게 다 주어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편은 내게 예쁜 옷을 입혀 주고 싶어 했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아니다.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인 후, 실리를 택하는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었다.
닿고자 한 곳이 달랐다.
옷이 뭐라고.
주식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