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 그리고 나의 아내
얼마 전,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마이클>을 재미있게 보았다던 캐나다 사는 딸에게서 오늘 글 한 편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에 관한 글이었다.
딸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에, 딸이 한글을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딸의 글은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한국어 표현력을 담고 있어 적잖이 놀랐다. 평소 딸은 자신에게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훨씬 더 편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문장 곳곳에 스며든 깊이는 여느 한국인보다도 섬세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간 팝스타를 회상하는 글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읽어 내려갈수록 단순한 팬의 감상문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세월을 지나 뒤늦게 깨닫게 된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딸은 마이클 잭슨을 향한 연민이 어느새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닿아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예전에도 딸에게 "이게 정말 네가 쓴 글이 맞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무래도 나를 닮았나 보다. 물론 이런 농담을 던지면 딸은 깔깔 웃겠지만 말이다.
딸의 얘기를 듣고 얼마 전에 나도 극장에 가서 <마이클>을 보았다. 딸의 글을 읽으며 나 또한 마이클 잭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글의 많은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 어느 한 문장에서 내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 초라한 자신과 사투하고 있는 나.”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괜히 마음이 시렸다. 요즘 삶이 많이 힘든 걸까.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혹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건 아닐까. 딸은 구독자 17만이 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지만, 부모라는 존재는 이상하게도 자식의 “별일 없어”라는 짧은 대답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괜찮다고 말할수록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더 쓰라릴 때가 있다.
딸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의 삶이 네 기대와 많이 다른지, 경제적인 문제인지,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인지, 아니면 그냥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피로인지.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젊은 시절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며 작아지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삶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그것이 결국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는 가치라고 말이다.
나는 아내를 항상 생각한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옅어진다고 하지만, 사계절이 지났지만 내게는 아직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아내가 참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미화되는 건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내게 과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요즘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슬픔은, 그 보석 같은 사람에게 내가 충분히 보석 같은 대접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지상에서 다 주지 못했던 사랑까지 남김없이 갚아주리라 다짐해 본다.
딸의 글 한 편을 읽다가 나는 그렇게 오래 생각에 잠겼다. 아마 부모란 끝까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자식의 글 한 줄 속에서도 괜찮은 척 숨겨놓은 마음을 읽어내려 애쓰고, 혹시 힘든 건 없는지 걱정하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지난 삶까지 되돌아보게 되는 존재.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늘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