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음악 이야기

함께 듣던 노래는 이제 기억이 되어

by유석

나는 오감이 둔한 편이다. 미각도, 청각도 그렇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아주 맛없는 음식도 없다. 입맛이 단순해서 낯선 음식은 잘 먹지 못하고, 특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저 배가 고파서 먹을 뿐이다. 그래도 하루 세 끼는 꼭 챙겨 먹는다.


음악도 비슷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 랩은 아직 잘 모르겠다.) 아침 식사 때는 KBS FM의 클래식 프로그램을 듣고, 저녁에는 트로트 음악 방송을 본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음악을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유명 가수의 콘서트라면 종종 함께 찾아가곤 했다.


그런 이유로 오랜 시간 줄 서서 대기해야 하는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고가의 오디오에도 큰 관심이 없다. 100만 원짜리 오디오와 1,000만 원짜리 오디오의 차이는 분명히 느끼지만, 그 미묘한 차이를 위해 900만 원을 더 투자할 마음은 아직 없다.


하지만 오감이 뛰어난 절친들이 가까이 있다는 건 어쩌면 하늘이 내게 준 선물 같다. 그들 덕분에 혼자서는 느끼지 못했을 맛과 음악을 함께 즐기며,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기억에 남는 콘서트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갔던 콘서트는 1995년 9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공연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그의 음악을 자주 들었기에 한국에서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표를 구했다.


당시 젊은 한 여성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음악에 몸을 맡기며 춤추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요즘 같으면 자연스러운 장면이겠지만, 그때만 해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 10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History World Tour를 보았다. 우리가 그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대형 해외 공연이라 놓칠 수 없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인파, 폭발적인 퍼포먼스, 심지어 전차(탱크)까지 등장했던 무대는 지금 생각해도 압도적이었다.


국내 가수의 공연으로는 1999년 11월, 정동 소극장에서 열린 이은미의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

무대 위에서 신발을 벗고 노래하던 ‘맨발의 디바’ 답게, 단 한 소절에도 혼이 실려 있었다.


요즘은 실력파 가수들의 공연이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가수들이 콘서트를 잘 안 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TV 생방송에서도 립싱크가 흔하던 시절이었으니, 진짜 목소리로 무대를 꽉 채우는 이은미의 공연은 큰 울림이었다.


해외 디바들의 무대


2000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에드먼턴에서 살 때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셀린 디옹(Céline Dion)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공연은 화려함과 폭발적인 가창력의 정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녹음보다도 더 살아 있었고, 고음에서 무대 전체가 진동하는 듯했다.


반면 셀린 디옹의 무대는 정반대의 감동이었다. 화려하기보다 절제된 감정과 완벽한 음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My Heart Will Go On’을 부를 때, 객석 전체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 휘트니 휴스턴을 ‘3대 디바’라 불렀다.

휘트니의 공연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치 내 음악 청춘의 한 페이지가 닫히는 듯한 아쉬움을 느꼈다.


다시 한국에서


2022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에일리와 골든걸스(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의 공연을 보았다.


에일리는 '한국의 비욘세'라는 별명처럼,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으로 젊은 세대의 디바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골든걸스의 무대는 그야말로 ‘경력의 품격’이었다. 절정기를 지난 네 명의 가수가 한 무대에서 각자의 인생과 목소리로 노래할 때, 그 자체로 ‘시간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들의 노래에는 젊은 날의 열정 대신 삶의 무게와 여유가 담겨 있었다.


잊지 못할 이승철의 노래


2024년, 아내는 혼자 이승철 콘서트에 다녀왔다.

사실 나도 그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아내가 투병 중 도움을 많이 준 절친의 아내와 함께 가고 싶어 해서 '나는 이승철 노래가 별로'라는 거짓말을 해가며 기꺼이 양보했다. 공연 며칠 전 그분이 개인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자, 아내는 다른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날 공연 중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수화기 너머로 이승철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르는 라이브가 들려왔다. 그 노래는 내 전화기에서 아내 전화의 컬러링이다. 아내는 내가 그 노래를 좋아하는 걸 알고, 전화기를 통해 공연 현장의 감동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내 전화기에서 그녀의 컬러링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그 노래는 더 이상 전화벨이 아니라 사랑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내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서 하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아직 콘서트 만큼은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노래를 듣던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면, 다시 콘서트장을 찾아가 볼까 한다.


그때는 무대의 화려함보다, 음악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

음악은 결국, 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랑의 소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