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에 쓴 글입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현지 지인들 — 특히 한국인이 아닌 캐나다 사람들 — 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I am so sorry for your loss.”였다.
나는 그런 인사를 들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에 맞는 대답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Thank you for your kind words. It’s been a really difficult time.”
혹은 “It means a lot to me.”
짧지만 따뜻한 그 말들은 내 마음에 진심으로 닿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로부터는 그런 위로의 말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고인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왜일까?
한국 슬롯에서 고인 이야기를 꺼리는 이유
생각해 보면, 한국 슬롯에서 고인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문화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
1. 감정을 절제하는 정서
한국은 전통적으로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왔다.
유가족 앞에서 감정을 자극할까 봐, 고인 이야기를 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 유가족에 대한 배려 (혹은 회피)
“괜히 얘기 꺼냈다가 울면 어쩌지?”
“내가 더 곤란해지지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오히려 진심 어린 위로를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3. 죽음에 대한 금기 의식
죽음을 언급하면 재수 없다는 미신적 인식, 또는 불편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 고인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4. 관계 중심 문화의 조심스러움
서양은 개인 중심이라면, 한국은 관계 중심 문화다.
→ 조화와 예의를 중시하다 보니 상대가 불편해할지도 모르는 말은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5. ‘말보다는 분위기’로 전달하는 문화
한국에서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과 ‘침묵’으로 위로가 전해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위로는 기억되지도, 공유되지도 않을 확률이 높다.
내 경험 속의 차이
한 번은 내가 캐나다에서 딸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한 한인 부부가 정성스럽게 직접 만든 음식을 가지고 위로차 나를 찾아왔다. 몇 시간을 함께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 부인이 남편에게 “절대로 고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라고 말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장례식에 위로 카드 한 장을 정성껏 적어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로 하든 글로 쓰든,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이 명확하다.
한국에서는 문자나 카톡 메시지로 위로를 전하고, 요즘은 조의금도 계좌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받은 위로 문자들을 모아보니 A4 용지로 27쪽이나 되었다.
형식적인 인사도 있었지만, 진심이 담긴 글들도 많았다.
그 모든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아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는 아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웃고, 때로는 울면서 그녀를 추모하고 싶다.
물론 감정이 복받쳐 말문이 막힐 때도 있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순간이야말로 고인의 삶이 살아 있는 방식 아닐까.
“그분은 정말 착하고 따뜻한 분이셨어요.
그분의 선한 영향력은 제 마음에 오래 남을 거예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나도,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다.
그건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기억의 공유이고, 삶의 존중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마음은 같다
어느 문화가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보내는 마음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할 것이라 믿는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함께 기억해 준다면,
그것이 조금 더 따뜻한 방식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