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남편의 뒤늦은 사랑 고백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을까. 요즘 젊은 세대야 이 말을 스스럼없이 주고받지만, 60대인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에게 직접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슬롯적 분위기가 변했지만, 적어도 내 세대에게 사랑 고백은 익숙지 않은 문화였다. (내가 살아온 궤적이 일반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험은 그러했다.)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작 아내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들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받은 카드에는 분명 적혀 있었지만, 내 면전에서 육성으로 그 말을 들은 적이 언제였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사랑했을까’ 하는 엉뚱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아내는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평소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TV에서 수상 소감 같은 감정적인 장면이 나오면 “손발이 오글거린다”며 자리를 뜨거나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아내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늘 드러나 있었다. 아내는 나와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캐나다에 살던 시절, 내가 혼자 한국에 다녀올 때면 그 시간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고, TV 프로그램 자체보다 내 곁에 나란히 앉아 시청하는 그 순간에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아내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처음 만나 이별의 순간까지 42년을 함께했지만, 돌이켜보면 아내의 태도와 선택 하나하나에는 언제나 나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입으로 하는 표현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행동으로 이어온 말이었던 것 같다.
반면 아내는 자신이 주는 사랑만큼 나에게도 그만한 사랑을 기대했던 것 같다. 무심한 내 성격 탓에 그 바램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 갈등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내는 서운함을 누르고 나의 부족함까지 품어주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투병 중 나와의 대화에서 내 성격에 대해 작은 아쉬움을 내비쳤던 것도, 아마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그 작은 갈증 때문이었으리라.
아내는 평생 나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다. 투병 중에도 자신이 아픈 것보다, 그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오래 남아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대신, 조금은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난 것만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아내가 평소 절친들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서 언제 떠나도 미련이 없어.”
비록 내가 다 채워주지 못한 빈틈은 있었겠지만, 아내는 우리 부부의 삶을 ‘행복’이라 정의해 주었다.
나는 아내와 내가 화려하거나 성공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그리고 착한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잘나지는 못했지만, 잘 살았다. 그래서 크게 후회는 없다. 다만 조금만 더, 딱 10년만 더 시간이 허락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나 역시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 크기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할 것 없는 나를 왜 그토록 깊이 사랑해 주었는지... 그저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내와 나는 영원히 헤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다. 아내는 하늘나라에서 평안을 누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훗날 내가 하늘의 부름을 받는 날, 마중 나와 나를 안아줄 아내의 환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재회한다면, 아내가 가슴 한구석에 품었던 그 아쉬움을 나의 사랑으로 듬뿍 채워주고 싶다.
오늘따라 아내의 그 지극한 사랑이 눈물 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