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한 달

1주기를 앞두고, 다시 마주한 그 한 달

by유석

다음 달이면 벌써 아내의 1주기가 돌아온다.
내가 아내 없이 혼자 1년을 살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아내는 2년여의 투병 기간 동안, 마지막 한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힘들었던 마지막 한 달의 시작이 바로 이 즈음이었다.


하루도 아내를 그리워하지 않은 날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의 강도는 조금씩 옅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달을 다시 마주하니,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고개를 드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30년 동안 컴퓨터로 일기를 써오고 있다.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한 달 전, 혹은 일 년 전의 기록을 손바닥 보듯이 꺼내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자연스럽게 ‘작년 오늘’의 시간을 되짚어 보게 된다.


- 2025년 4월 4일 - 아내와 마지막으로 함께 호숫가를 걸었던 날
- 2025년 4월 10일 -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마지막으로 서울숲에 꽃구경을 갔던 날
- 2025년 4월 16일 - 동생 중 한 명의 조직이 100% 일치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 2025년 4월 20일 - 캐나다 절친 부부와 마지막 외식을 했고, 아내가 응급실을 찾았던 날
- 2025년 4월 21일 - 아내가 7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원했던 날
- 2025년 4월 29일 - 아내의 척수 전이가 확인된 날
- 2025년 4월 30일 - 아내가 오마야 수술을 받고, 아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날


나는 아내와 평소에 감추는 것 없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그 의미와 방식, 장례 방식과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아내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런 대화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내 말이 혹시 아내에게 ‘포기’로 들릴까 봐, 혹은 아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나 자신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응급실에서 며칠을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그때는 아직 내부 장기로의 전이를 알기 전이었고, 결코 마지막을 예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 당신과 함께한 42년이 너무 행복했다고.

-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 당신 덕분에 내 인생이 의미 있고 풍요로웠다고.

- 고맙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 나의 무심함과 미숙함으로 당신 마음에 남긴 상처들을 모두 용서해 달라고. 미안하다고.


아내는 이미 다 알고 있다며,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그런 성격에 대한 작은 아쉬움도 함께 덧붙였다. 그 말은 내 마음을 한편으로는 가볍게 해 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 남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내는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다시 말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하늘이 허락한 마지막 나흘이었다. 그 나흘 후에, 아내는 또다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그 나흘이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내 역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와 딸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딸은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유언 같은 말을 남기지 않은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나 또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의 휴대폰과 컴퓨터를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의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진심은 꼭 마지막에 말로 정리해서 남기는 게 아니잖아.”


생각해 보면 아내는 이미 평소의 삶 속에서, 우리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따로 정리된 말이 없다는 것이, 곧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남겨진 ‘말’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 시간 속에 담겨 있던 수많은 대화와 눈빛,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야말로 아내가 남긴 진짜 유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기록을 넘기며 과거를 되짚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붙잡아 주고 있다는 사실도 느낀다. 슬픔은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그 슬픔마저 아내와 함께했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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