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영상에서 다시 들은 아내의 피아노 소리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거의 일주일이 되어간다. 시차도 거의 극복한 것 같고, 급한 일들도 모두 처리했다.
한가한 주말,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최신 포맷으로 변환해 정리했던 오래된 가족 동영상 파일들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모두 201개나 되는 파일이다. 변환 작업을 하면서 몇몇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궁금하다고 하나둘 보기 시작하면 작업이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의도적으로 영상의 내용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변환 작업에만 집중했다. 덕분에 한 달여 만에 모든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중 한 파일을 열어보았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교내 기혼자 기숙사를 나와 살게 된 주택에서 촬영한 영상이었다.
무려 34년 전의 모습이다.
카메라는 집 안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렸다. 당시 한국에서 와서 우리 집에 함께 살며 학교를 다니고 있던 처제가 치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영상 말미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화면에 나타났다.
아내였다.
‘어... 처제가 아니고 아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였네.’
그런데 또 하나 이상한 것이 있었다. 우리가 교내 기숙사에 살 때에는 분명 집에 피아노가 없었는데, 이사한 집에는 어떻게 피아노가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 피아노를 샀을 리는 없고, 귀국하는 다른 유학생에게서 중고로 구입하거나 얻었던 것일까. 아니면 임대했을까.
부산에 살고 있는 처제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처제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와 처제 모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으니 아마 임대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34년 전의 피아노는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그 피아노를 치던 아내의 모습은 영상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내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피아노 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내가 어렸을 때 장모님께서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아내와 처제, 처남을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무서운 피아노 선생님 때문에 한동안 피아노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중학교에 진학해 공부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 배우기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렇게 멀어졌던 피아노에 대한 아내의 애정이 다시 살아난 것은 우리가 빅토리아로 이사한 뒤였다.
딸을 출가시키고 비즈니스를 인수하면서 빅토리아로 이사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일종의 제2의 신혼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39년 결혼 생활 가운데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빅토리아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아내는 빅토리아 한인 피아노 클럽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빅토리아에서 알게 된 지인의 언니가 집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은 뒤, 혼자 연주하기보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고 친목도 나누고 싶어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내놓은 것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지만 베토벤 곡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상당했고 피아노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처음에는 몇몇 지인으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초보자부터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까지 실력도 다양했다.
아내는 그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형편없다며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결국 가입했고, 동시에 개인 레슨까지 받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아내의 피아노 선생님은 우리가 운영하던 비즈니스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이었다. 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아내는 연습을 위해 키보드도 구입했다. 우리가 콘도에 살았기 때문에 아내는 헤드폰을 끼고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한 채 연습했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았고, 집에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거의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았다.
클럽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열었다. 회원들은 보통 두 곡 정도씩 준비했지만 연주가 의무는 아니었고,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도 괜찮았다. 연주 순서는 대체로 초보자부터 시작했는데 아내의 순서는 늘 앞쪽이었다.
한 달 동안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연습하던 아내는 정작 모임 날이 가까워지면 긴장하는 듯했다.
어느 날 정기 모임을 위해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즐기다 와요.”
아내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게 말했다.
“망쳤어!”
하지만 정말 슬퍼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동안 연습한 만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진한 아쉬움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내에게서 한 번도 “오늘은 연습할 때보다 잘했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내는 무대 체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동안 피아노 클럽은 아내에게 큰 활력소였다. 연습할 곡이 있고, 한 달 뒤 그 곡을 들려줄 사람들이 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웃고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는 것. 옆에서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나도 흐뭇했다.
한 번은 나도 게스트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어서인지 아내가 평소보다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나는 더 이상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정기 모임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아내는 근처 피아노 연습실을 찾아가 연습할 정도로 피아노에 진심이었다.
아내의 피아노 클럽에 대한 애정은 다른 데에서도 드러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번 모든 회원의 연주를 촬영해 온라인 클럽 공간에 올렸다. 모임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영상을 정리하고 올리는 일을 끝낸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임은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한 모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랜드 피아노와 집 공간을 내놓았고, 회원들은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 나누었다. 피아노를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타국에서의 삶을 함께 즐기는 작은 공동체였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정기 모임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다시 시작되지는 않았다.
2022년 초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키보드를 큰 손자에게 주었고 한국에 온 뒤에도 아내는 다시 키보드를 구입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사라져서인지 예전만큼 열심히 치지는 않았다.
대신 아내는 악기 연주에 문외한인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를 바랐다.
“나이 들어서 피아노 치면 치매 예방에도 좋대.”
그런 말을 하며 여러 번 나에게 피아노를 권했다. 나도 아내의 소망에 부응해 보려고 기초 피아노 교재까지 사서 키보드 앞에 앉았다. 하지만 몇 번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내가 떠난 뒤 그 키보드는 내 절친의 아내에게 주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내가 다시 쳐볼 키보드도 없다.
오래 전의 영상은 내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34년 전 어느 날, 미국의 주택 한쪽에서 아내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빅토리아에서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내 곁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피아노는 그렇게 아내의 삶 한쪽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가 왜 그렇게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함께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내가 흐뭇해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선뜻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내가 피아노를 치지 못해도 아내가 피아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안다. 모임을 앞두고 매일같이 연습하던 모습도, 집을 나서며 긴장하던 표정도, 돌아와서 “망쳤어!”라고 말하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34년 전 아내가 연주하던 피아노 소리를 다시 들었다.
피아노는 이제 우리 집에 없고 아내도 내 곁에 없지만, 그날의 연주는 오래된 영상 속에 남아 있다.
아내가 좋아했던 피아노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