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남편의 늦은 반성문
아내가 내 곁을 떠난지 500일도 지났는데도 요즘 들어 아내가 떠나던 날의 일들이 부쩍 떠오른다.
내가 더 잘할 수는 없었는지, 아내가 혹시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떠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내가 무엇을 더 했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아쉬운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아내가 떠나기 열흘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내의 지상에서의 인연의 끈이 그렇게 허망하게 끊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023년 초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부 장기로의 전이는 없는 병이기에 관리만 잘하면 보통의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5년 4월 말 내부 장기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아내가 그해 말까지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5월 초, 의사로부터 아내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되지 않고 어쩌면 그 주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 나는 아내가 그다음 주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틀 뒤 내 곁을 떠났다.
깔끔한 성격의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또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할까봐 서둘러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아직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가끔 아내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내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아내를 ‘보내줄’ 마음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아내가 떠나는 날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해주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첫째, 마지막 입원을 위해 집을 나서던 날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통증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무사히 받은 뒤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한동안 집에는 오기 어렵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심한 통증으로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던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할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내의 옷 입는 것을 도와주고, 신발도 신겨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집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아내를 업고 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서둘러 차를 가지고 와서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훗날 하늘나라에서 아내를 다시 만나면 매일이라도 업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 아내의 마지막 열흘 동안의 일이다.
나는 그 싸움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간병했다.
문병 온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식사를 하기 위해 병실을 비워야 했을 때, 밤에 잠을 잘 때도 나는 콧줄을 자꾸 빼려는 아내의 손을 침대에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내가 먹지도 자지도 않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셋째, 아내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내가 함께하지 못했다.
주말에만 간병을 도와줄 수 있었던 처제에게 토요일 밤을 부탁하고, 그 이후부터는 내가 계속 병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이 아내의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다.
처제의 말로는 그날 밤 아내의 의식이 가장 또렷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가 자꾸 병실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나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넷째, 아내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순간 내가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나는 비교적 사소한 일까지도 잘 기억하는 편인데 그 순간의 상황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지 않다.
병실에 함께 있었던 딸과 처제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당직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의료진이 아내의 병상을 정리한 뒤, 장례식장 직원이 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왜 그때에 아내를 안아주지 못했을까.
나와 아내의 지상에서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어서였을까.
나는 울부짖지 않았다. 큰 숨이 쉬어졌지만 의외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내와의 이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그리고 아내의 영혼이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한 번만 더 안아줄걸.
바보같이, 멍청하게 넋이 나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그런 중요한 순간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언제나 일이 지나간 뒤에야 후회하는 것일까.
그나마 입관식에서 관 뚜껑을 닫기 전, 입맞춤으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잘 가요, 내 사랑... 먼저 가 있어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후회도 결국 비슷하다.
더 많이 이야기할걸.
더 많이 손잡아줄걸.
더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업어줄걸.
그리고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해줄걸.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후회가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내가 아내를 그만큼 사랑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잘해주어도 결국 ‘조금만 더’가 남는 모양이다.
아내와 함께했던 42년의 긴 세월 속에서 내가 잘해주지 못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사랑했고, 함께 웃었고, 힘들 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아내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아내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그때에는 이번 생에서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해주고 싶다.
손을 더 오래 잡아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힘들어하면 업어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오래 있어주고 싶다.
아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어서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말하며 나를 안아준다면,
나도 아내를 꼭 안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보, 이 한심한 남편을 용서해줘요.
이번에는 당신 곁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줘요.
사랑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