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외계어
<2004년 3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신학기라 학부모 총회에 갔다.
아들 바카라상 위에 '어머니께'라고 적힌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들은 각자 자기 자녀가 쓴 글을 꺼내 읽으며 연신 미소를 머금었다. 나 역시 보기 전부터 미리 흐뭇한 마음이 되어 편지를 꺼냈다.
어떤 내용일까?
바카라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글쓰기에도 영 관심이 없는 아이인지라, 편지를 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마음이었다. 기대감을 안고 편지를 읽었다. 아들의 편지 원문 그대로 옮긴다.
'엄마야~ 훈이예횸...
내가 맨날 반찬 타령만 하고 까불기만 하고 공부도 잘 안 해서 ㅈㅅㅈㅅ해횸.
엄마 흰머리도 많이 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면 안 되는데 내가 자꾸 말썽 부려서 또 한 번 ㅈㅅㅈㅅ해횸. 그럼 ㅂㅇㅂㅇ~
아... 그리고 아햏햏뚫쀓괘틱팃틱끩’
혹여 옆자리의 엄마가 곁눈질로라도 읽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제 6학년도 되었으니 좀 진지하게 엄마에 대한 사랑을 편지에 담았으리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그나마 해마다 '만수무강하세요'만 달랑 써온 아이로서는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기도 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엄마, 내 편지 읽어봤어?"
뭔가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째려보기만 했다.
아이는 실망한 얼굴이었다.
때마침 옆에 계신 어머님이 궁금해하셨다.
그러고 보니 작년 어버이날, 엄마 아빠한테만 효도카드를 만든 것에 살짝 서운해하셨던 어머님이 떠올랐다.
"그냥... 학교에서 시키니까 억지로 몇 글자 적었더라고요. 엄마에 대한 사랑이라곤 도통 느껴지질 않는 글이었어요. 게다가 끝에는 장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글만 잔뜩 써 놓았는데 한숨만 나오더라고요."
실망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머님이 또 서운해하실까 봐 엄마에 대한 아들의 무심함을 일부러 더 강조하며 말씀드렸다.
내 말을 듣던 아들이 울상이 된다.
"끝의 글은 애교였는데, 그 앞에는 잘 썼잖아요. 정성스럽게 쓴 거라고요. 칭찬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 도대체 그 글로 칭찬을 기대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냥 이 정도가 아들의 글쓰기 한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등 뒤에서 우리 집 딸아이가 이 글을 지켜보며 한 마디 한다. 편지 뒤에 쓴 아들의 외계어는 어쩌면 욕일 수도 있단다.
단언컨대 내 아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뒤돌아 딸아이에게 엄하게 한마디 던진다.
"너나 잘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