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의 혀 같은 내 아들

아이들이 나를 살린다

by선물

<2025년 12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요양병원에서의 시간은 더디 흘렀다. 아침은 빨리 왔고 하루는 길었다. 그나마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덜 지루했다.

참고 견디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들이 찾아왔다. 퇴근 후 차도 많이 막혔을 텐데, 멀리서 나를 보러 와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마음까지 약해졌는지 아들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아들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에이, 우리 엄마 왜 울고 그래요. 이제 아무 걱정 말고 편한 마음으로 몸이나 챙겨야지. 그리고 혹시라도 엄마한테 간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 거 준다요. 약속했다요."

어린아이 말투로 내 등을 토닥이는 아들이 귀엽고도 든든했다. 다만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어이 그럴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암은 재발했고 내 간은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결국 기증을 받아야 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아이들에게 겨우 말을 꺼냈다. 남매는 주저함 없이 자신들의 간을 주겠다고 나섰다.

기증을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우선 공여자의 몸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부분이 상당히 솔깃했다.

비만인 두 아이는 체중을 감량해야 했고, 아들은 금연해야 했다. 운동이라곤 멀리하던 아이들에게 더는 미룰 수 없는 동기가 생긴 셈이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끝내 성공하지 못한 아들의 금연도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아들은 그토록 어려워하던 금연을 바로 해냈다. 이후로 아들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묻어나는 일은 없었다.

여러 고민 끝에 공여자는 결국 딸아이로 결정되었다.

수술 후 잘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간 딸아이와는 달리, 나는 1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중환자실을 오가는 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편 혼자 간병을 감당하는 일은 그야말로 극한의 고통이었다. 고생하는 아빠를 위해 아들이 중간중간 휴가를 내 가며 나를 간병했다. 덕분에 남편은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찾을 수 있었다.

아들은 입의 혀처럼 살뜰하게 나를 보살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알아서 배려했다.

배변 처리를 할 때면 비위가 상할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드르렁 천장을 뚫을 듯 코를 골며 자다가도, 내가 부르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벌떡 일어났다. 웃는 얼굴이었다.

남편만큼은 노련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편안하고 푸근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퇴원을 했다. 집안일은 온전히 남편 몫이 되었다. 지치고 고단한 마음 하나 둘 곳 없이 외로운 남편이었다.

이제 주말이면 아들 혼자서 우리 집으로 온다. 아빠가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 드리기 위해서다. 어디서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주말마다 홀로 육아를 감당하느라 고생하는 며느리에게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남편이 정성껏 차려놓은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맛도 느낄 수 없고 삼키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산다.

나를 살리고, 또 나를 살게 하는 아이들을 위해 밥 한술이라도 더 입에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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