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여자친구
<2005년 3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봅니다.>
중1 아들은 여자친구가 있다. 그것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공식 커플이다.
아들은 처음 그 이야기를 내게 꺼내면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그냥 반 친구들이 둘 사이를 묘한 분위기로 몰아가더니 커플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의지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아들과는 달리 바카라도 많이 읽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성숙해 보였다.
철없는 아들은 그런 면에서 어쩌면 여자친구에게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들이 그 친구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싫어했다면 분위기와 상관없이 끝끝내 거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커플이 된 지 100일이 다가온다고 한다.
그러니 실제로 커플이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아들아이는 커플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처음 가졌던 마음 그대로 변함이 없다.
아들은 여자친구가 선물을 보내면 답을 하는 정도의 마음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커플들이 소중히 여기는 기념일들이 아들에게는 부담스럽게만 여겨졌다.
사실 그 여자아이가 아들을 좋아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벌써 5년째다.
그 여자아이는 공식 커플이 된 날로부터 100일, 150일, 200일 되는 날이나 생일 등을 매우 특별히 생각한다.
그때 주고받을 선물까지 미리 의논하자며 아들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고 버디버디 채팅을 하자고 한다.
아들은 슬슬 그런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커플이 되면 어느 정도의 부담과 바카라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아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는 선물 살 돈도 없거니와, 또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도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상태라 그런 일로 버디버디 채팅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그냥 친구로만 지내자는 말을 하고 말았다.
좋은 친구, 편한 친구.
그러나 여자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깨지자'는 말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때문에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말도 했다니 아들아이는 여자친구가 점점 더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도 그 여자아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참 똑똑하고 착한 데다 진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들과는 관심사도, 감정의 결도 너무 달라서 둘 사이가 몹시 힘들어지는 것 같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이미 사춘기까지 온 듯하다.
아직도 만화바카라이나 읽고 게임을 즐기는 아들은 원래부터 여자친구 사귀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여자아이는 아들에게 자꾸 아프다고 말한다. 스스로 우울증이라며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아들은 채팅할 때면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문자를 몰래 봐도 개의치 않는다.
자기 메일 비밀번호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상관없다며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일도 아들이 버디버디 채팅할 때 옆에서 들여다보다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복잡한 것은 질색한다.
그런 아들이 이제는 자기까지 우울해진다며 다시는 여자친구는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
그냥 친구로 지내면 편하고 좋을 텐데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하지만 또 여자친구가 상처받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속상해한다.
내가 딱히 해 줄 말은 없다.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희, 깨졌냐?'
나는 아들에게 깨졌다는 표현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는 일절 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상심해 있을 그 아이가 나로서도 몹시 걱정된다.
좋은 친구로 지낸다면 가끔 불러서 맛있는 것도 먹이고 하련만, 친구로 지내는 것은 절대 싫다고 하니 도리가 없다.
나는 사실 아들이 그 여자아이처럼 벌써 어른스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직은 철없는 아이로 지내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하지만 나 역시 딸을 둔 엄마이고, 그 나이 때 비슷한 감정을 겪었던 터라 그 여자친구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다시는 여자친구 같은 거 안 만들어."라고 말하는 아들도 사실은 걱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지금은 그저 두 아이가 처한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재미있게만 생각했던 아이들의 어린 사랑.
뜻밖의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