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꿈을 말린다.
<2009년 2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
아들 녀석이 기타를 사고 싶다고 했다.
클래식 기타는 예전에 할머니가 사 주셔서 이미 집에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건 베이스 기타였다.
고2가 되는 아들이 기타를 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공부할 때지, 다른 곳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타일렀다.
아들은 공부도 할 테니, 하고 싶은 것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너무도 당당한 모습이었다.
아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노력하는 모습부터 보여 달라고 했다. 대뜸 돌아오는 답이 조건을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 녀석은 자신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도 아들은 무언가를 원할 때, 대신 자신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고 말했었다. 그에 맞서 나는 다짐이나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여 달라고 했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해주었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대답을 했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결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말에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했다.
집에서는 게으름이나 부리면서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열심히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다. 정말 아들 녀석 말처럼 밖에서 열심히 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는 나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정보다 결과를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놈, 아무래도 켕기는 것이 있는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과정과 결과를 운운하던 아이는 자취를 감추고 돌연 적성 타령을 시작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당연히 최선을 다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 또한 양보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맞섰다. 그러면서 당장 2학년 성적을 보겠다고 못을 박았다.
아들은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괘씸한 마음에 네가 부모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런 말은 먹히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자식일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역시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의 말이 흘러나왔다. 다소 식상한, 많이 뻔한.
아들은 자기가 부모라면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줄 거란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끊었다.
나쁜 놈.
제 아빠 앞에서는 겁이 나서 말도 못 꺼내면서 왜 번번이 만만한 엄마만 붙잡고 씨도 먹히지 않을 말을 불쑥불쑥 꺼내서 애를 태운단 말인가.
내 생각은 그랬다.
음악이나 미술 등 예체능 쪽으로는 일단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자질이라고. 취미로 즐길 수 있을 만한 실력과는 달리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재능은 눈에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아들은 음악에 재능이 없어 보였다
공부는 달랐다. 예능인도, 연예인도 일단 학벌이 좋으면 그만큼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계속 공부를 강요했다.
사실 딸을 통해 깨달은 것은 조금 달랐다.
뭔가를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딸을 통해 알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을 내 마음대로 억눌렀더니 그 뒤로 아예 꿈을 잃고 살아가던 것을 생생히 보았다.
나중에 애니메이션도 좋고 뭐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그때는 이미 멍한 눈빛이었다.
딸아이는 고3이 되어서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며 메이크업을 배우게 해 달라고, 그 분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늦었다며 또 한 번 막았지만, 너무도 간절해서 결국 허락해 주었다. 딸아이는 그때부터 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시작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렇게 생생하게 겪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들에게는 나의 그런 경험조차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들에게는 우주인 이소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녀는 꿈을 정해 놓고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꿈이 생겼을 때 준비가 덜 돼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늘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했다.
그 말을 아들 녀석이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아들아이가 앞으로 먹고 살 일을 염려하게 된다. 지금 기타를 시작해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도 아닌 마당에.
어쩌면 기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에겐 어느 순간부터 그저 학교나 무사히 졸업하기만 바랄 정도로 기대를 접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던 것이다.
남편은 나와 달랐다.
남편은 끝까지 우리 딸에게 많은 자질이 있고 늦게라도 크게 빛을 보리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저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기술이나 익힐 수 있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겐 기대와 욕심을 계속 가지게 된다.
아들 녀석도 지금은 일단 음악을 취미로 생각할 뿐, 전공할 생각은 단념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으면 아들아이도 좀 더 진지하고 바카라임감 있게 자신의 꿈을 찾고자 노력하게 될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이에게 제대로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