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손에서는 비누향이 진동하고

고등학생 아들이 흡연을 했다

by선물

<2009년 9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의 흡연 문제로 선도위원회가 열린다고 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전화기를 쥔 손이 떨렸다.

학교 복도에서 아들과 같은 반 친구 엄마를 만났다. 학년 초 학부모 모임에서 짧게 인사를 나눴던 분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는 모범생 딸을 둔 그녀는 학부모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다.

못 본 척 지나가려 했지만,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다가와서 학교에 온 이유를 물었다. 창피했지만, 어차피 딸아이를 통해 알게 될 일이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머, 그런 일로 선도위원회가 열린대요? 우리 큰 아이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는데요. 남자애들 다 그렇죠, 뭐."

다 그럴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회의실에는 다른 학부모가 한 명 더 있었다. 아들 친구의 아버지였다. 서로 인사를 나눌 분위기는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회의가 진행되던 중, 학부모들은 잠시 밖으로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징계까지 해야 하느냐며 다른 선생님들과 맞서셨다고 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오래도록 나를 위로하셨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훈이는 큰 문제없는 아이입니다. 사랑이 참 많은 아이예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선지 정말 밝고 따뜻해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요. 앞으로는 잘할 거예요. 믿고 어머니도 응원해 주세요."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를 드리러 간 자리에서 뜻밖의 따뜻한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 뒤로 광채가 비치는 듯했다. 허리를 굽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징계를 받아 속상했지만, 선생님 덕분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그 주말, 남편은 아들의 친구를 동네 중국집으로 불렀다. 아들과 함께 흡연을 하다 걸린 아이였다. 가장 친한 친구라니, 남편도 나도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었다.

동그란 검은 안경을 쓴 친구의 얼굴에는 여드름이 송송 올라와 있었다. 덩치와는 달리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탕수육은 아이들에게 전부 양보했다. 참 잘도 먹었다.


"부족하진 않니?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 더 시키면 되니까."
부족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예, 괜찮습니다. 물을 더 먹으면 됩니다."
장난기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자칫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아직 배가 고프다는 말을 그렇게 점잖고 예의 바르게 할 줄이야. 내가 여태껏 들어 본 배고프다는 표현 중 단연 최고였다.


만나보길 잘한 것 같았다.

얼마 뒤, 친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전철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굳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절로 들려왔다.


"아, 그러니까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왜 들켜서 이 난리야? 참, 학교도 별나다. 고등학생이 담배 피우는 게 무슨 큰 문제라고. 그깟 걸로."

'뭐지?'
이제는 더 듣고 싶어졌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따라 내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들의 흡연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수 차례의 노력에도 결국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어느 날 남편과 저녁 산바카라을 하던 중이었다. 공원 한쪽 구석에서 남자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편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아들도 그런데 누구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말렸더니, 남편은 자기 아들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도 누군가는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며 기어이 나서려 했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말렸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생들, 지금 뭐 하는 거지?"


"아, 저희 미성년자 아닙니다."

"그럼 신분증은 있는지?"
신분증을 확인했다. 그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엿한 성년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동안이었다. 남편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남편은 조금 전과는 달리 반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합니다."
다행히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가끔씩 아들의 손가락을 납치해서 냄새를 맡는다. 갓 씻고 나온 듯 비누향이 진동한다. 아들은 요즘 들어 손을 씻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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