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 오실 어머님을 기다립니다
<2018년 2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엄마, 그동안 해왔던 할머니에 대한 기도 모두 취소해 달라고 다시 기도드렸어."
갑자기 비장한 어투로 말을 꺼내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까닭을 물었다.
"고모들이 그러셨거든. 할머니가 너무 심한 통증으로 고통받으시니까 오래 사시라는 기도 대신, 가실 때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가시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할머니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근데 막상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너무 겁이 나. 그래서 그동안 바친 기도 모두 다 취소한다고..."
"그랬구나. 잘했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할머니가 무작정 오래 사시는 것보다 단 얼마간이라도 고통 없이, 의식이 깨끗이 돌아오셨으면 좋겠어. 누군지도 알아보고 못다 한 말씀도 나누시다가 편히 가셨으면 싶거든"
다소 엉뚱하긴 했지만, 아들의 진지함에 나도 가볍게 답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예전에 영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다가도 편찮으신 할머니가 떠올라 첫 장면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북받친 감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주먹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는 아들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성인이 된 후, 온라인 게임 때문에 독립한 아들이 어머님께서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주말에 집에 들렀을 때였다. 할머니 옆에서 핸드폰 게임에만 열중하다가 기어이 한 소리를 들었다.
" 너는 이제 이 늙은 할미랑 얘기하기도 싫은 게지?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잖나."
손꼽아 손자를 기다리셨던 어머님은 서운해하셨다.
"에이, 할머니도.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설마 제가 그럴 리가요."
할머니 말씀에 뜨끔해진 아들은 그제야 곁에 바짝 다가앉아 늘 하던 대로 뺨을 비비며 그 큰 덩치로 할머니 품에 안겼다.
다소 기분이 풀리신 어머님은 조금 뒤 까무룩 잠이 드셨고 아들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슬프게도 그날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어머님과 아들의 마지막이었다.
아들이 다시 집을 찾았을 때 어머님은 이미 정신을 반쯤 놓으신 상태였다. 예전의 명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토록 사랑하시던 손주와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게 되셨다. 아들은 울먹이며 자바카라했다.
"아. 정말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 할머니랑 더 가까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했어야 했는데 너무 후회스러워."
"네 잘못이 아니란다.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할머니도 뼈가 아프셔서 힘들어하셨을 뿐이지, 갑자기 이렇게 되실 줄은 아무도 짐작 못했어."
곁에 있던 딸아이 역시 뒤늦은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옆에 오라고 부르실 때마다 바로바로 갔어야 했는데...... 맨날 딴짓만 했어. 죄송해서 어떡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사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이별에는 늘 회한이 남는다. 아이들에게 너희 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특히 아들에게는 평소 할머니를 가장 많이 안아 드리고 기쁘게 해 드렸던 게 바로 너였다고 다독였다.
아들의 취소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어머님은 미미하게나마 차도를 보이셨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모든 신체기능이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명료한 의식을 되찾기는 어렵다고 했다. 남편은 최대치의 희망을 갖고 몸을 아끼지 않고 간병에 매달렸다.
최대치의 희망.
그것은 아이 같은 모습으로라도 우리 곁에 다시 오셔서 휠체어로나마 모시고 함께 다니실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다.
어머님은 뇌에 염증이 생긴 후로 사리 분간이 어려워지셨다. 그 와중에도 유독 나를 찾으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단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선택은 어머님의 몫이다.
아직은 아쉬움에 어머님의 앙코르를 외치며 기다리는 가족들이다. 그 마음과 사랑이 누워계신 어머님께도 분명 전해졌을 것이다. 당신께서도 남은 힘을 다해 애쓰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힘겹게 다시 돌아오신다면 이제 어머님은 내게 모셔야 할 시어머님이 아닌,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새로운 아이로 오시는 것이리라.
특별한 욕심도, 섣부른 예단도 하지 않으련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