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넘어
<2015년 10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남편의 통장으로 아들의 월급 전액이 입금되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입금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미리 알리지는 못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기도 했고 자초지종을 말하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아들은 기술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방위 산업체에 취직했다. 아직 스물한 살이었다. 자기 돈을 알아서 관리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들의 수입 전부를 자신의 통장으로 보내게 한 뒤, 일정 금액을 용돈으로 주었다. 아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불만도 없어 보였다.
묵묵히 몇 년을 그렇게 지내던 아들이 어느 날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돈을 버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시작하며 독립했던 아들은 주말마다 집으로 왔다. 집에 올 때면 할머니께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드리고 싶은데 자기 용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도 자기가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리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남편의 돈 관리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확고해서 차마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편은 아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기를 바랐다. 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땀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워낙 컸던 것이었다.
남편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월급을 보내지 않는 아들에게 극노했다. 아들은 상의해 본들 꿈쩍하지 않을 아빠라고 생각해서 우선 일부터 저지르고 본 것이었다.
남편은 결국 아들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강수를 두고 말았다.
어머님은 손자를 보고 싶어 하셨다. 어느 주말, 아들은 옷을 가져간다는 핑계로 집으로 왔다. 남편은 슬쩍 집을 나가 주었다.
한 달이 지났다. 남편의 통장으로 아들의 돈이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자신이 쓸 돈을 조금 떼어놓은 모양이었다. 아빠가 주던 용돈보다 조금 많은 금액이었다.
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아들은 첫 한 달 때 컴퓨터를 구입하느라 한 푼도 보내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송금되는 아들의 돈이 남편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아들이 중간중간 집으로 와서 아빠께 부리는 애교도 한몫을 했다. 남편은 받아주지 않고 냉랭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코 싫을 리가 없었다.
아들은 무턱대고 저지르고 본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오히려 아들의 이런 행동을 잘못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바카라임 있는 성인으로서 받아들이고 존중했다.
어쩌면 아들이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를 넘어,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어른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실을 안 친정 식구들은 놀라기만 했을 뿐,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아이는 요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아이들과 비교하는 일조차 피했다.
나중에 지난 이야기를 하던 중 아들이 뽐내듯 말했다.
"엄마, 나는 사실 처음부터 내가 받는 월급 모두 다 엄마 아빠 드리려고 했어. 내가 갖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그때 엄마한테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들이 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아들이라 남편의 처사가 더 옳았던 것 같다.
도대체 셈이라고는 모르는 녀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