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게을러서야

잠과의 전쟁

by선물

<2008년 10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그만 포기해야 하려나.

아들을 깨우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등교 시간을 맞추기에는 이미 늦었다. 오늘도 결국 지각 처리가 될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아들의 등교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내가 죄인이라도 된 양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학교가 장난도 아니고, 그깟 잠 하나 못 이겨서 지각이라니 참 한심한 노릇이었다.

애가 타신 어머님이 아들 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후, 아들이 눈을 비비면서 나왔다. 대충 세수만 하고 나오는 아들에게 어머님이 밥을 한 숟갈이라도 떠먹이려 하셨지만, 아들은 늦었다며 가방만 챙겨 나갔다. 어떻게 늦은 줄은 알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조곤조곤 달래셨단다. 할머니의 애원에 그 무겁던 눈꺼풀이 겨우 떠진 모양이다.

길에서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들의 잦은 지각을 하소연했더니 병원부터 보냈느냐고 물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오히려 그녀가 놀랐다. 출결이 얼마나 중요한데 넋 놓고 있느냐며 꾸짖듯 말했다. 병원에 다녀온 기록이 있으면 지각 처리를 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입시에서 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꼼수 쓰기 싫어요.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요."

걱정해 주는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이래저래 속상한 마음에 참 못난 대답을 해 버렸다. 뾰족한 내 말에 그녀는 '아서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괘씸한 아들이 밉기도 했지만 은근히 출결 관리도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훗날 아들에게 원망이라도 듣게 되려나 모르겠다. 에고, 나쁜 놈.

집에 와서 또 다른 친구 엄마에게 전화로 하소연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반 학부모로 친하게 지낸 이웃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민이 아빠는 늦잠 자고 지각하는 민이에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민이 네가 최고라고 했어요. 자기는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무조건 해야 하는 줄 알고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게 후회된다고. 누가 시키는 대로 살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했어요. 네가 아빠보다 훨씬 멋진 놈이라며. 기가 막히죠?"

기가 막혔다. 좋은 의미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아빠였다.

대단한 엄마도 있었다.

아들이 70점을 받아왔는데 집안이 축제 분위기였다며 웃었다. 엄마, 아빠는 그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천재인가 보다며 기를 세워 주었다고 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부모들이 있다. 어떤 부모가 옳고 어떤 방법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자녀와의 관계를 잘 맺고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내일 아침에도 아들을 깨우려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한때는 특목고까지 준비시키며 나름 아들에게 욕심을 부렸던 엄마였지만, 지금의 내게는 성적도 대학도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행복해지려면 적어도 제 앞가림은 하고 살아야 할 텐데, 저렇게 게을러서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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