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머리는 왜 저 모양일까
<2006년 9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우리 집 막둥이는 강아지다. 이름도 '막둥이'다. 우리 식구 중 인물이 제일 훤하다. 공원을 산바카라할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막둥이에게 집중될 정도다. 나는 괜히 우쭐해진다.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할 때도 막둥이 이야기를 하면 신이 난다. 자식들 이야기할 때와는 딴판이다. 자식들 이야기에는 마음이 움츠러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기억난다. 내 눈에는 정말 예쁘고 잘난 아이들이었다.
우선 첫째인 딸아이의 이야기다.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상하게도 예쁘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보면서도 아무 말 없는 게 내심 속상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당시 사진을 보니, 슬프게도 그들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사진 속 아이는 내 기억 속 그 예쁜 아이와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나는 엄마 고슴도치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를 만나면 꼭 덕담을 건넨다. 세상이 험해져 간혹 그런 눈길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자식을 귀엽다고 해 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리라. 첫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나는 그런 칭찬이 참 고팠다.
둘째인 아들은 조금 달랐다. 하얀 피부에 동그란 얼굴이 다른 사람들 눈에도 꽤 예뻐 보였던 것 같다. 아들 귀한 집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효자 소리를 들었는데, 인물까지 좋으니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고 착하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런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소위 말하는 '역변'을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미장원에 다녀온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구레나룻을 기르고 뒷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울프컷'을 하고 온 것이다. 너무 거슬렸다. 거칠어 보였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한 달을 참은 끝에 아이의 손을 끌고 미장원으로 향했다. 내가 원하는 단정한 모습으로 잘라 놓으니 그제야 보기 좋았다. 흐뭇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데, 아들의 눈에서 순식간에 굵은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나를 쳐다보는 아들의 눈빛에 깜짝 놀랐다. 명백한 증오의 눈빛이었다. 사춘기의 서막을 알리는 강렬한 표식이었다.
"엄마, 정말 싫어!"
아들은 혼자 집으로 뛰어갔다. 자랑스럽던 아들이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 눈빛이 너무 속상해서 그 뒤로는 아들의 머리 모양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매일 아들을 마주하면서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대체 저 얼굴이 어떻게 괜찮다는 걸까. 거울을 보기는 하는 걸까.
"아빠처럼 머리를 자르면 친구들이 다 놀려서 쪽팔린단 말이야!"
아들이 왜 그렇게 보기 싫은 머리를 고집하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 친구들도 한결같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남편 역시 아들의 모습에 질색을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나섰다.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아들을 직접 데리고 미용실로 갔다. 아들은 전형적인 신사의 단정한 모습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온 탕자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 우선 내가 살 것 같았다. 예쁘다는 내 말에 아들이 차갑게 말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정말 다신 이 머리 안 해."
다음 날, 아들이 학교로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한 학생이 더운 줄도 모르고 하얀색 털모자를 깊게 덮어쓴 채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가방에서 그 모자가 나왔다.
"얘, 너 병자 같아 보이더라. 모자 쓰지 말고 다니면 안 될까."
"안 돼. 절대로!"
아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한숨이 툭 터져 나왔다.
며칠 후, 한 모범생 아이의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모범생의 머리 모양을 칭찬하면서 다들 이렇게 자르도록 권하셨는데, 정작 그 아이는 선생님께 칭찬받은 게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했다.
남들처럼 머리를 자르지도, 등하굣길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지도 못하게 하냐며 엄마에게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니, 평소 순종적이라고 소문난 아이였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
나도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아들의 머리는 금방 길어질 것이고, 곧 미용실에 갈 것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두렵다.
아이를 미용실에 데려가 요즘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로 멋지게 잘라 달라고 당부했다는 엄마도 있다는데 내겐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그래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작은 위로를 받는다. 묘한 동지애마저 느껴진다.
'아, 지긋지긋한 사춘기여. 어서 해맑은 내 아이를 돌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