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19금

교과서에 다 나오는 건데

by선물

<2005년 4월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아직도 내게는 어리게만 보이는 아들이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키도 크고 제법 듬직한 체구를 가진 청소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구석으로 슬쩍 피하기도 한다며 킥킥 웃는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며 너스레를 떨 때 보면 그냥 영락없는 철부지 아이 같다.

그런 아들의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닥쳤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려고 애는 쓰지만, 혼자서 공부할 능력은 부족해 보인다.


하려는 의지가 기특해서 만사 제쳐놓고 내가 도와주기로 한다. 지켜보니 가장 큰 문제가 어휘력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바카라을 멀리하던 아이라서 교과서 속 단어들이 하나같이 난해했을 것이다.

아들의 유일한 애독서는 '피구왕 통키'였다. 바카라을 읽으라는 다그침에 바카라장에서 꺼내 들었던 유일한 바카라이 그것이었다. 수년 동안 아들의 바카라상에는 '피구왕 통키'가 얹혀 있었다.

아들은 공부를 하려고 해도 낱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낙천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조적'이라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대구(對句)'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이룬다는 것인지 아들에게는 한결같이 뜬구름 같은 말들이다.


'운문이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는 글을 보면서 자기는 도무지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난감해한다. 온 가족(시부모님과 자녀 둘 포함, 여섯 식구)이 바카라을 좋아하고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바카라이 널려 있지만, 그 손을 억지로 뻗게 할 도리는 없다.

우리 때와 달리 요즘 남학생들은 가정 과목도 배운다. 그런데 가정 교과서에는 정자, 난자, 사정 같은 괜히 민망해지는 단어들이 대놓고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 단어들을 아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기가 뭣해서 혼자 공부하게 내버려 둔다.


잠시 후, 바카라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기어이 방에서 튀어나온다. 도무지 말뜻을 몰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하소연한다. 교과서에도 버젓이 나오는 내용이니 나도 눈 딱 감고 아들 방으로 들어간다.

사정할 때 정자가 3억 개에서 5억 개가 나온다는 내용이 있다.

"엄마, 그러면 사정하면 정자가 보이겠네?"
정자가 뭔지는 알고 묻는지 모를 일이다.

"보이겠지."
대충 대답한다.

"우와! 올챙이 같은 게 5억 마리씩이나 나오다니......"
아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근데...... 우, 우리 눈에 올챙이 같은 것들이 막 움직이는 게 보이는 건 아니고...... 흐음...... 그, 그것들이 모여 있는 덩어리가 보이는 거지. 그니까...... 한,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보이는 건 아니야."

내 입은 연신 버벅거린다.

그런데 대답을 하다 보니 구체적인 설명으로 이어지면서 뭔가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나름 학문적인 관점으로 얼른 궤도를 수정한다.

"즉, 현미경으로 봐야 볼 수 있다는 거야."

"아하. 그럼 직접 보지는 못하는 거네. 근데 엄마, 사정하면 선물 주는 거야?
아들의 예기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해서 무슨 소리인지 묻는다.

"아니, 누가 사정을 해야 엄마가 선물 준다고 해서... 뭐, 아님 말고."

그 '사정(事情)'과 이 '사정(射精)'이 서로 다르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몰라 입을 꾹 닫는다.


교과서에는 그 뒤로도 임신, 몽정, 자위 등 아무런 여과 없이 날것 그대로의 아찔한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아들의 눈을 보니 곧 폭풍 질문을 쏟아낼 태세다.

"밥 먹자."

일단 자리를 뜬다. 아들은 조금 있다가 먹는다고 한다. 나는 먼저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잠시 후, 아들이 큰 소리로 질문을 한다.

"엄마, 정자와 난자가 만난대. 그리고... 이게 뭐지? 어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좀 설명해 줘요."
나는 밥 먹다 놀라서 급체할 것 같다.


벌떡 일어나 아이 방으로 들어가서 황급히 문을 닫는다. 가정 공부는 나중에 하고 다른 과목부터 공부하라고 이른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나도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는다. 귀가 어두우신 아버님은 부디 못 들으셨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성교육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남편에게 맡길까 생각한다. 사실 그조차도 뾰족한 수로 보이지는 않는다. 선생님들이 교과서로 가르쳤으련만, 왜 내 아들은 저리도 내용을 모르는 건지 답답하다.

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자라서인지 아직도 자기가 아기인 줄 안다. 하지만 어엿한 중학생이 된 마당에도 여전하니 이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인정하기 싫지만 아마도 후자가 맞을 성싶다.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는다.
미뤄 두었던 가정 공부를 위해 심호흡 한 번 하고 아들에게로 향한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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