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피워 올린 가장 짙은 시간

[ 꽃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9

by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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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잠화

한적한 돌담 밑이나 화단 귀퉁이를 걷다 보면 어둠 속에서 등불을 켜듯 환하게 피어난 은백색의 꽃무리를 만납니다. 옥으로 만든 여인의 비녀를 닮아 붙혀진 이름, 옥잠화(玉簪花)입니다.


넓고 시원스러운 초록 잎사귀 위로 미끈한 꽃대를 길게 밀어 올려 우아하고 정결한 백합 모양의 흰 꽃송이들을 줄지어 피워내는, 가을의 길목을 지키는 대표적인 꽃이지요.


옥잠화는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오직 ‘단 몇 시간의 황홀한 밤’을 위해 제 모든 생명력을 집중합니다. 한낮의 쨍쨍한 햇살 아래서는 꽃잎을 굳게 닫아두어 그 자태를 결코 헤프게 드러내지 않다가 뜨거운 대낮의 소음과 열기가 가라앉고, 서늘한 땅거미가 내려앉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봉오리의 끝을 살며시 비틀며 꽃잎을 열기 시작합니다.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 여덟 시 무렵, 옥잠화는 마침내 순백의 꽃잎을 활짝 펼치며 숨 막힐 듯 맑고 짙은 박하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냅니다. 그 향기와 자태는 실로 눈부시지만, 이 꽃의 절정은 참으로 짧습니다.


밤새 서늘한 달빛을 벗 삼아 제 안의 향기를 아낌없이 태워 올린 옥잠화는, 이튿날 아침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꽃잎을 오므리며 고개를 떨굽니다. 하루 중 오직 서너 시간, 가장 어둡고 고요한 시간대에 제 생의 최고의 순간을 설정해 두고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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