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폭포를 지나 화성 같은 고원을 달리다
2026년 8월 4일 화요일 · 베르겐에서 골까지, 310km 4시간 50분
베르겐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베르겐 남쪽에 있는 노르웨이 국민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박물관에 들렀다가 떠나고 싶었는데, 모두 늦잠을 자는 바람에 곧장 출발해야 했다. 그게 못내 아쉽다.
아침 열 시 이십 분, 베르겐을 떠나 오슬로가 있는 동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셰르브스포센과 하르당에르 현수교를 거쳐 하르당에르비다 시닉루트에 올라, 보링포센을 지나 골(Gol)까지 가는 일정이다.
지도로 보면 하루 동안 세 가지 땅을 지난 셈이다. 호수와 골짜기의 보스 일대, 피오르드를 낀 하르당에르, 그리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하르당에르비다다. 바닷가에서 고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골짜기로 내려오는 310킬로미터, 운전만 4시간 50분이 걸린 길이었다.
하르당에르와 하르당에르비다는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쉽다. 여행 전에 정리해 둔 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르당에르는 하르당에르피오르드를 둘러싼 노르웨이 서부의 오래된 지역 이름이다. 하르당에르비다는 거기에 산 위의 넓은 고원을 뜻하는 노르웨이어 '비다(vidda)'가 붙은 '하르당에르의 고원'이다. 이날 달린 길로 치면 아이드피오르까지가 하르당에르이고, 보링포센을 지나 고원에 올라선 뒤부터가 하르당에르비다다.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딸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서둘러 휴게소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나오니,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사진 정보를 보니 보스(Voss) 근처 불켄(Bulken)이라는 지역에 있는 호수였다.
호숫가에서 사진도 찍고 물수제비도 떴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렌터카로 다니니 이런 일이 생긴다.
보스에서 13번 국도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셰르브스포센에 들렀다. 이름 끝의 '포센(fossen)'은 노르웨이어로 '그 폭포'라는 뜻이니, 셰르브스포센은 '셰르브(Skjerv)의 폭포'인 셈이다. 오후에 들를 보링포센도 같은 식으로 지은 이름이다.
폭포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굽이굽이 도는 내리막이었다. 이제는 이런 굽이길쯤은 웃으면서 내려갈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아래쪽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차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다니고, 이 길은 한적해졌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도 갓길에 차를 세우고 곧장 물가로 내려갈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물보라가 그대로 쏟아졌다. 눈앞에는 무지개가 떠 있었고, 사람도 별로 없어 야생의 폭포를 온몸으로 맞았다. 20분 만에 셋 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그래도 이날 가장 강렬하게 남은 곳이 여기다.
이곳에 아름다운 화장실이 있다고 알고 왔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폭포 꼭대기 쪽 주차장에 있는 작은 돌집으로, 안에서 폭포 윗부분이 내다보인다고 한다. 아래쪽 갓길에 차를 세우고 곧장 내려갔으니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우리가 흠뻑 젖은 그 자리에는 '샤워(the Shower)'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셰르브스포센에서 내려와 하르당에르 현수교로 가는 길은 산속 터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회전교차로가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곧바로 현수교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피오르드는 늘 페리로 건넜는데 여기서는 다리로 건넌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현수교는 물속에 기둥을 하나도 박지 않았다고 한다. 양쪽 기슭에 세운 주탑 사이에 케이블을 걸어 다리를 매단 구조다. 그 기술력에 감탄할 뿐이다.
다리를 건너 피오르드를 옆에 끼고 달렸다. 오후 두 시 무렵 아이드피오르(Eidfjord)에 닿았다. 하르당에르피오르드가 가장 깊숙이 들어온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다. 부두에 서 있던 크루즈선에는 이곳이 서쪽 바다로 떠나는 출발점이지만, 베르겐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우리에게는 하르당에르비다 시닉루트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서 화장실에 들르고, 늦은 점심을 먹으며 시닉루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르당에르비다 시닉루트는 서쪽 아이드피오르에서 동쪽 하우가스퇼까지 67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달리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보링포센을 지나 하르당에르비다를 가로지르는,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이틀 전에 게이랑에르-트롤스티겐 길을 달렸으니, 이번 여행에서 시닉루트 18곳 가운데 두 곳을 지난 셈이다.
아이드피오르를 출발해 십 분쯤 오르자 드라이브 음악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풍경이 펼쳐졌다. 부가킹즈의 「여행길」을 크게 틀고 신나게 달렸다.
보링포센으로 가는 길에 터널을 지났다. 그런데 터널 안에서 길이 곧게 뻗지 않고 꼬불꼬불 돌았다. 세상에 이런 터널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터널 네 개가 이어지며 가파른 골짜기를 돌고 돌아 고원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노르웨이 물가가 비싼 것도 이런 길로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물류비가 많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셰르브스포센도 그랬지만, 보링포센 역시 크게 기대하고 온 곳은 아니었다. 일정표에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라고 적어 두기는 했어도, 그 한 줄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런데 터널을 지나 올라와 만난 폭포는 장관이었다.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망대까지 걸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협곡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같았다.
전망대를 지나 까마득한 협곡 위에 걸린 X자 모양의 다리를 건넜다. 그 높은 곳에 이런 다리를 놓다니. 노르웨이는 자연이든 다리든 터널이든 스케일이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딸은 노르웨이에 가면 트레킹을 꼭 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숙소가 있는 골 근처에 괜찮은 트레킹 코스를 알아 두고, 조금 일찍 도착해 걸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폭포를 끼고 걷는 이 코스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계획을 바꿔 아래쪽 폭포까지 내려가 숲을 지나는 트레킹을 했다.
다시 위쪽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면 몇백 미터를 가파르게 올라야 했다. 그래도 이런 풍경과 함께하니 그 오르막마저 멋있었다.
여기에서 딸과 다음에는 몽블랑과 뉴질랜드로 트레킹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만큼 우리 둘 다 이곳 풍경에 압도되었다.
폭포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를 향해 다시 달려 고원으로 올라서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정표에는 '툰드라 고원 지대'라고 적어 두었지만, 글자로만 알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마치 화성에 온 듯했다. 한라산 꼭대기의 백록담 같은 호수들이 수없이 흩어진 사이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이번 노르웨이 일정에 베르겐을 넣지 않았다면 이 길로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빠듯해진 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이 광경 앞에서 고단함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아쉬운 것은 사진이다. 동영상 위주로 찍다 보니 남은 사진이 많지 않다. 돌아와 고를 때 그게 더 아쉬웠다.
다음에 노르웨이에 가족과 함께 다시 온다면 이곳 하르당에르비다는 꼭 일정에 넣고 싶다. 그때는 하루 만에 지나치지 않고 여유 있게 둘러보며, 고원의 트레킹 코스도 천천히 걸어 보려 한다.
노르웨이 남부를 한 바퀴 도는 날을 상상하며 일정을 미리 그려 보았다. 그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숙소에서 먹을 저녁을 사 가려고 골 시내에 들렀다. 키오스크에서 피자를 주문하니 15분 뒤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그사이 마트에 들러 미스터 리(Mr. Lee) 컵라면을 샀다.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는 한국 출신 이철호 씨가 만든 라면으로, 이번 여행에서 꼭 먹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피자 가게로 돌아가 보니 피자는 아직 굽지도 않은 채였다. 점원이 우리를 급히 부르더니 이렇게 주문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키오스크 옵션에 0크로네라고 적힌 항목이 두 개 있어서, 공짜면 체크해야지 하고 둘 다 눌렀던 것이다.
알고 보니 'Uten ost'는 '치즈 없이', 'Uten pizza saus'는 '피자 소스 없이'라는 뜻이었다. 점원은 주문이 이상해서 조리를 미루고 있었다고 했다. 확인을 마치고서야 피자가 화덕에 들어갔다. 하마터면 공짜 좋아하다가 치즈도 소스도 없는 피자를 먹을 뻔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온 숙소는 1630년대에 지어진 농가 헤슬라 팜이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 도착하니, 오후부터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마당이 질척하고 으슬으슬 추웠다.
우리가 묵은 곳은 여러 농가 건물 가운데 하나인 스타부레트(stabburet) 독채였다. 여기는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로, 쥐가 오르지 못하게 기둥 위에 띄워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2층은 여름에 젊은이들의 잠자리로도 쓰였다니, 옛날에도 사람이 자던 자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셈이다.
인스타 감성의 사진을 잔뜩 찍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사백 년 가까이 된 건물이니 낡은 것이야 당연하지만 기대보다 허름했다. 내 솜씨가 젊은 친구들만 못한 것도 있겠지만, 찍어 놓고 보니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다. 어제 묵은 베르겐의 모던 하우스가 워낙 좋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피자와 라면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숙소는 조금 불편했지만, 셋이서 그 하루를 오래 이야기하며 밤을 보냈다.
내일은 렌터카를 반납하고 오슬로 시내로 간다. 베르겐 국립극장 앞에서 만난 입센이 마지막 십여 년을 산 집과 뭉크의 그림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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