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두 가지 전기를 쓰는 까닭?

우연한 역사적 선택이 현재를 괴롭히게 된 사연

일본은 전기가 두 가지입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동일본은 50 헤르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은 60 헤르츠. 전압은 100 볼트로 같지만 주파수가 다릅니다. 전 세계에서 한 나라 안에 두 가지 주파수가 공존하는 곳은 일본이 유일합니다.


평소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게 커다란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입니다.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부의 발전 설비가 대거 멈췄습니다. 반면 피해가 적었던 서일본은 전력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서쪽의 남는 전기를 동쪽으로 보내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50 헤르츠 계통과 60 헤르츠 계통은 그대로 연결할 수 없는, 사실상 다른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지역은 계획정전을 시행하며 한동안 버텨야 했습니다.


이 균열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력 사업은 처음부터 전국 단위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공장이 몰려 있는 지역에 전기를 대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별도의 전기회사가 생겨났습니다. 표준을 맞출 필요가 전혀 없었던 시기입니다.


1896년, 도쿄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던 도쿄전등은 도쿄 아사쿠사발전소에 발전기를 들여왔습니다. 독일 AEG로부터 수입한 설비였고, 유럽 표준인 50 헤르츠 방식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897년, 오사카 지역의 오사카전등은 사이와이초발전소에 발전기를 들였습니다. 이번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설비였고, 미국 표준인 60 헤르츠 방식이었습니다. 두 회사의 발전 설비 수입처가 달랐던, 그 우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일본과 서일본 사이에 전기라는 경계선을 그은 셈입니다.


주파수가 다르면 무슨 일이 생기나


주파수가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류 전력망에 연결된 발전기들은 모두 같은 속도로 회전하며 위상을 맞춰야 정상적으로 하나의 계통을 이룹니다. 50 헤르츠 계통과 60 헤르츠 계통을 직접 연결해 버리면 두 발전기가 서로 다른 속도로 돌면서 위상이 어긋나고, 이는 설비 손상과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집니다.


가전제품 차원에서도 영향이 있습니다. 냉장고 컴프레서나 세탁기, 선풍기처럼 모터가 교류 주파수에 맞춰 직접 회전하는 제품은 50헤르츠용을 60 헤르츠 지역에서 쓰면 정격보다 빠르게, 반대의 경우 느리게 돌아갑니다. 반면 TV나 컴퓨터처럼 내부에서 교류를 직류로 바꿔 쓰는 제품은 주파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왜 지금이라도 못 고칠까


이후 일본 경제가 성장하면서 지역 간 전력망을 하나로 묶어야 할 필요가 분명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50 헤르츠 계통과 60 헤르츠 계통이 각각 넓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상태였고, 발전기와 변압기, 공장의 모터까지 모든 설비가 특정 주파수에 맞춰 이미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로 통일하려면 이 모든 것을 새로 바꿔야 했고, 그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한쪽의 교류를 직류로 변환한 뒤 상대 주파수에 맞춰 다시 교류로 바꾸는 주파수 변환소를 두어 두 계통 사이에 제한적으로 전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환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은 크지 않습니다. 평상시 소량을 융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2011년처럼 한쪽 지역 전체가 전력난에 빠졌을 때 다른 쪽의 여유 전력을 대규모로 밀어 넣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한국의 전기는 어떻게 시작됐나


한국의 전기 역사는 결코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에 백열등이 켜졌습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8년 만이었습니다. 1883년 미국에 파견됐던 보빙사 일행이 현지에서 전등 사업을 목격하고 돌아온 것이 계기였습니다. 고종은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에 발전 설비를 발주했고, 향원정 연못의 물로 발전기를 식히는 방식으로 750개의 전등을 밝힐 수 있는 규모의 전등소가 세워졌습니다.


산업과 민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기 사업은 이보다 10년 뒤인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이듬해인 1899년에는 서울에 전차가 개통됐습니다. 이 사업들은 처음부터 미국 자본과 기술에 크게 의존했고, 이후 콜브란·보스트위크 등 미국계 회사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국의 전력망은 처음부터 미국 표준인 60 헤르츠로 자리를 잡았고, 지금까지 전국이 단일 주파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전력 보급이 본격화되기 전인 1970~2000년대에 220 볼트로 승압을 마쳤습니다. 반면 일본은 이미 100 볼트 설비가 전국에 광범위하게 깔린 뒤였고, 여기서 220 볼트로 옮기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지금도 100 볼트를 쓰고 있습니다. 먼저 시작한 쪽이 나중에 바꾸기는 더 어렵다는, 같은 패턴입니다.


지금 앞서 있는 것이 반드시 계속 앞서 있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훗날 되돌리는 비용까지 미리 헤아려 두어야, 나중에 그 선택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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