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기술은 없다, AM 라디오의 생존 방정식
매일 라디오를 틀면 습관처럼 듣는 말이 있습니다. "AM 몇 킬로헤르츠", "FM 몇 메가헤르츠". 음질은 FM이 훨씬 좋다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왜 좋은지, 그리고 음질이 나쁜 AM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AM과 FM을 이해하려면 전파가 무엇인지부터 잠깐 짚어야 합니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파도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파도의 높이, 즉 진폭과, 파도와 파도 사이의 간격, 즉 파장입니다. 진폭이 클수록 파도가 세고, 파장이 짧을수록 파도가 촘촘합니다.
전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폭은 전파의 세기, 파장은 전파의 간격, 주파수는 1초에 몇 번 진동하는지를 나타냅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주파수는 높아집니다. AM과 FM은 바로 이 진폭과 주파수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서 소리를 담습니다.
AM은 535 kHz~1,705 kHz, 즉 킬로헤르츠(kHz) 단위의 중파 대역을 사용합니다. FM은 88 MHz~108 MHz, 즉 메가헤르츠(MHz) 단위의 초단파 대역을 씁니다. 1 MHz는 1,000 kHz이니, FM이 AM보다 약 100배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셈입니다.
주파수가 낮을수록 파장이 길어집니다. 파장이 길면 건물이나 산 같은 장애물을 훨씬 잘 넘어갑니다. 바다의 너울과 잔물결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너울(긴 파장)은 방파제를 넘어오지만, 잔물결(짧은 파장)은 막힙니다. AM이 FM보다 훨씬 넓은 지역으로 전파를 보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FM은 높은 주파수 덕분에 채널 하나에 더 넓은 대역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음질 차이의 핵심입니다.
AM과 FM이라는 이름 자체에 두 방식의 차이가 담겨 있습니다.
AM — Amplitude Modulation (진폭 변조)
전파의 주파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폭(파의 높낮이)을 변화시켜 소리를 담는 방식입니다. 마치 북소리와 같습니다. 음정은 하나인데, 세게 치고 약하게 쳐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잡음입니다. 잡음은 대부분 전파의 진폭을 교란시킵니다. AM은 진폭이 곧 신호이기 때문에, 한 번 잡음이 섞이면 원래 소리와 잡음을 구별할 방법이 없습니다.
FM — Frequency Modulation (주파수 변조)
진폭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주파수를 미세하게 변화시켜 소리를 담는 방식입니다. 여러 개의 다른 음을 낼 수 있지만 강약 조절이 되지 않는 하프시코드가 FM과 비슷한 악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전파에 잡음이 섞인다고 해도 진폭만 바꿀 뿐 주파수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FM 수신기는 리미터 회로로 진폭의 흔들림을 잘라내고 주파수 변화만 읽어냅니다. 잡음에 강한 이유입니다.
FM이 음질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데, AM 방송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도달 거리입니다. AM은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까지 전파됩니다. 특히 야간에는 전리층에 반사되어 도달 거리가 더 늘어납니다. FM은 기본적으로 가시거리(약 100km 이내) 방송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이 높고 고층 건물이 많은 곳에서는 훨씬 짧아집니다.
둘째, 재난 상황에서의 광역 커버리지입니다. 지진, 홍수, 대규모 정전 상황에서 FM 중계 네트워크가 마비되어도 AM 한 개 송신소가 수백만 명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각국 재난방송 체계가 AM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NHK AM 방송은 재난 방송을 이어가며 정보를 전했습니다.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가 마비되어 TV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먹통이 된 상황에서 말이지요.
셋째, 인프라 매몰비용입니다. 전국에 깔린 AM 송수신 설비를 걷어내고 FM으로 전환하는 비용이 막대하며, AM 전용 라디오를 사용하는 고령 인구층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AM은 FM보다 "열등한" 기술처럼 보입니다. 음질도 나쁘고, 도달 거리만 길 뿐이니까요. 그런데 도달 거리가 길다는 그 단 하나의 특성이, 문명이 멈추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기술로 AM을 지켜냅니다.
기술의 쓸모는 평상시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기술의 진짜 가치입니다. AM 라디오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AM 라디오는 한 대 가지고 계시길 권합니다.
오늘 서랍 속이나 캠핑 장비 틈에 잠들어 있는 라디오를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집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AM 라디오가 준비되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