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미생물의 절묘한 콜라보

우리 술을 만드는 절묘한 지혜, 누룩

주류 라벨에는 그 술을 만드는 데 사용한 다양한 재료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쌀과 정제수라는 원료 이외에 어떤 제품에는 '누룩'이라고 쓰여 있고, 어떤 제품에는 ‘국(麴)과 효모’라고 적혀 있어요. 그냥 넘겨버리기 쉽지만, 그 작은 차이를 살펴보면 술이 만들어지는 수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술이 되려면 두 번의 변신이 필요합니다


술은 알코올입니다. 그리고 알코올은 당분에서 만들어지죠. 효모라는 미생물이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내뱉는 것, 이것이 발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술의 원료가 되는 쌀이나 보리는 당분이 아니라 전분, 즉 녹말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효모는 전분을 직접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쌀이나 보리 같은 곡물로 술을 만들려면 두 단계가 필요해요.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당화'와, 그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발효'입니다. 이 두 과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술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포도주는 이 고민이 없어요. 포도에는 이미 당분이 가득하니까요. 효모만 넣으면 끝입니다. 반면, 맥주는 '맥아(엿기름)'를 사용합니다. 보리를 싹 틔운 맥아에는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는 효소가 풍부해서, 당화 작업을 먼저 마친 뒤 효모를 투입해 발효를 진행하죠. 당화와 발효를 순서대로, 차례차례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누룩, 두 종류 미생물의 공생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우리 술은 이 두 과정을 동시에 해결하는 절묘한 지혜가 담긴 도구를 씁니다. 바로 누룩입니다. 누룩은 밀을 빻아 반죽한 뒤 일정한 형태로 빚어 띄운 것인데요, 그 안에 두 종류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어요. 당화를 담당하는 누룩곰팡이와, 발효를 담당하는 효모가 같은 공간에서 공생합니다. 자연의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와 효모가 누룩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이라, 잎이나 솔잎 위에 누룩을 올려두고 띄우기도 했어요. 자연에서 미생물을 포집하는 방법이었던 셈이죠. 이 두 미생물이 동시에 일하면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높은 도수의 비밀, 병행복발효


맥주처럼 당화 먼저, 발효 나중의 순서로 진행하면 한 가지 한계에 부딪힙니다. 당분이 한꺼번에 많이 생기면 농도가 높아지는데, 이 높은 당도가 오히려 효모의 생육을 방해해요. 삼투압 때문입니다. 설탕물에 생명체를 담그면 세포 속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당도가 너무 높으면 효모도 탈수 상태가 되어 활동을 멈춰버리죠.


그런데 누룩 방식은 다릅니다. 곰팡이가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는 즉시, 효모가 그 당분을 낚아채 알코올로 만들어버려요. 당분이 쌓일 틈이 없는 거예요. 덕분에 당도는 낮게 유지되고, 효모는 거침없이 일할 수 있어요. 이 절묘한 협업 덕분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은 당화와 발효를 순서대로 진행하는 방식보다 훨씬 높은 알코올 도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국, 현대가 선택한 방식


그런데 누룩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어요. 자연에서 미생물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보니 품질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면 미생물의 구성도 달라지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의 공장식 생산에서는 '국(麴)'을 씁니다. 우수한 누룩곰팡이를 선별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뒤, 쪄낸 고두밥에 균일하게 접종한 것이 국이에요. ‘입국’이라고 라벨에 쓰여있는 경우도 있어요. 국을 사용하면 당화 능력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죠. 여기에 별도로 배양한 효모를 투입해 발효를 진행하면, 매번 균일한 품질의 술이 나옵니다.


국을 사용한 공장식 양조방식은 일본에서 개발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으로 만든 제품은 ‘일본식 제법’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이미 우리 술 깊숙이 들어와 있는 양조법을 단지 일본에서 개발된 방식이라고 손가락질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원하는 맛을 설계하고 재현하기에는 국 방식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막걸리를 만들면서 느끼는 점은, 맛과 향의 깊이를 만드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다양한 미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풍미는, 통제된 환경에서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우니까요.


전통주의 묘미는 불완전함에 있습니다


와인은 생산 연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위스키는 어떤 오크통을 썼느냐에 따라 향이 달라집니다. 그 다양함이 오히려 수집과 탐구의 즐거움이 되었죠.


아무리 신경을 써도 해마다,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전통 누룩으로 빚은 술입니다. 이 차이를 품질의 한계로 볼 수도 있고, 살아있는 술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어요. 오랜 세월 쌓아온 조상의 지혜와 현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전통주는 지금도 조금씩 진화하고 있습니다.


라벨의 '누룩'과 '국', 두 글자 차이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깊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자리 잡은 술병의 라벨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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