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다시 설계하는 퇴사 이후의 삶

AI와 함께 혼자 일하며 여러 개의 가능성을 살아가는 법

퇴사 이후, 나는 몇 명이 되었을까


유튜브를 시작한 지 열 달이 지나간다. 열 달이면 계절이 세 번쯤 바뀌고, 서버로 쓰기 위해 구매한 맥미니에는 먼지가 깊이 내려앉으며, 카메라 앞에서 버벅거리던 사람도 제법 능숙한 표정을 지을 만한 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유튜브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직업일까. 강의실일까. 아니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는 조금 시끄러운 출구일까.


적어도 생계를 위한 다음 직업으로 유튜브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사람이다. 작가로서는 문장으로 생각을 건네고, 강사로서는 목소리와 표정과 손짓까지 동원해 같은 작업을 한다.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직업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새롭게 익힌 기술을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고, 듣는 사람이 졸기 직전에 약간의 재미도 끼워 넣는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는데 사람들이 피식 웃는 재주는 내게 없다. 나의 유머는 대부분 사전에 기획된다. 상황과 청중의 연령과 분위기를 계산해 적당한 위치에 심어놓은 뒤 현장에서 슬쩍 꺼내 쓴다. 자연산처럼 보이지만 인공적인 양식이다. 그래도 웃어주면 고맙다.


나는 현재 퇴사 이후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다. 회사를 떠난 지 몇 달이 흐른 지금, 내 가능성을 다시 계산해 보는 중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월급이 끊기면 사람들은 그다음 장면을 걱정한다. 물류센터에 나가야 할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까. 대리운전을 시작해야 할까. 몸을 움직인 만큼 돈을 받는 정직한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줄을 선다.


그러나 내 몸은 노동의 정직함을 감당할 만큼 정직하지 못하다.


대학생 때 무거운 서버 장비를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피아노와 대형 서버를 옮기는 일이었다. 서버는 무사히 제자리를 찾았지만 나는 이틀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때 알았다. 힘을 쓰는 일과 나는 서로의 앞날을 위해 일찍 헤어지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그 뒤로 나는 몸을 덜 쓰고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는 고상한 지식이나 위대한 지성을 뜻하지 않는다. 요령과 잔머리, 일을 덜 복잡하게 만드는 잔꾀에 가깝다. 그 꾀를 붙잡고 이어온 온라인 게임생활을 지난 2월 끝냈다.


현재 나는 홀로서기 중이다. 혼자 기획하고, 만들고, 강의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사람을 만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혼자 일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상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동료가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나의 하루는 AI가 전날 정리해 둔 일정표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한다. 그 일정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조차 AI와 함께 만들었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방향을 제시했고, 녀석이 코드를 열심히 작성했다. 직접 개발했다고 말하기에는 손가락이 한 일이 별로 없고, AI가 만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녀석을 너무 많이 들볶았다. 공동개발이라고 해두는 편이 서로의 체면에 좋겠다.


AI가 지메일에서 새로 도착한 편지를 읽고 약속과 일정과 액션 아이템을 추출한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언제 만나야 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그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차곡차곡 정리한다. 필요한 일정은 캘린더로 넘어가고, 놓치기 쉬운 일은 리마인더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내 몹쓸 해마를 보완하는 디지털 장기기억장치인 셈이다. 나는 기록을 숭배하는 사람은 아니다. 기억력이 신통치 않아서 기록에 의탁할 뿐이다. 과거에는 내가 직접 메모를 남겼지만 요즘은 AI가 먼저 판단하고 기록한다. 나는 녀석이 정리해 둔 내용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끔 잘못 알아들은 부분을 붙잡고 잔소리를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과 유튜브 대본과 강의 자료의 상당 부분에 AI가 관여한다. 대본의 방향과 개념은 내가 잡지만 초안은 녀석이 맡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초안을 읽으며 문장을 걷어내고, 순서를 바꾸고, 내 경험과 생각을 집어넣는다.


그때부터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내게는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 있고, 반드시 지키고 싶은 문장의 온도가 있다. 어떤 문장은 보는 순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왜 지워야 하는지 말로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오랫동안 읽고 쓰면서 몸 안에 스며든 기준이다. 규칙이라기보다는 습성이고, 지식이라기보다는 암묵지에 가깝다.


AI는 내가 남긴 결과물을 읽는다. 그러나 그 문장을 쓰기까지 내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 어떤 표현을 썼다가 부끄러워서 지웠는지는 모른다. 녀석은 완성된 흔적을 학습하지만 실패의 감촉까지 소유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그래서 최종 판단은 여전히 내 몫이다. AI가 문장을 생산하더라도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내가 결정한다. 이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콘텐츠에는 내 이름만 남고 나는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AI와 함께 일하면서 한 사람의 역량은 이전과 전혀 다른 크기로 증폭된다. 오늘 어떤 미팅이 있고, 어떤 영상을 촬영하며, 무엇을 편집하고 발행해야 하는지 세부 사항을 모두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없다. 나는 전체 방향을 조망하고, 나머지 잔업은 AI에게 넘긴다.


물론 모든 것을 샅샅이 통제하지 못한다는 불안도 생긴다. AI가 처리한 일을 하나하나 마이크로 매니징하려 들면 혼자서 백 명의 직원에게 결재판을 받는 꼴이 된다. 1인 기업을 운영하겠다고 시작해놓고 자신이 만든 결재 서류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더 큰 가능성이 있다. 직원 한 명 없는 사람이 기획과 개발과 콘텐츠 제작과 고객 관리를 동시에 수행한다. 한 사람의 회사가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사무실처럼 움직인다. 점심 메뉴를 두고 싸우는 직원이 없다는 점도 나쁘지 않다.


나는 가끔 전 세계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 가운데 0.64퍼센트쯤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거는 없다. 숫자가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왠지 연구 결과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나는 그리 앞서 있지 않다. 새로운 모델과 오픈소스가 매일 쏟아지고, 어제 감탄했던 기술이 오늘은 평범한 기능으로 내려앉는다. 그래서 새로운 도구를 발견하면 직접 설치하고, 내 일과 강의와 콘텐츠에 적용해 본다. 단순히 소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사용해 보고 어디서 막혔으며 무엇이 쓸 만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건넨다. 그 사람이 내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도 콘텐츠를 만들 것이다. 바카라을 쓰고 강의 자료를 만들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다. 어떤 결과물은 무료로 공개하고, 어떤 결과물은 상품으로 판매한다. 무료라고 대충 만들고 싶지는 않고, 유료라고 쓸데없는 장벽을 세우고 싶지도 않다. 유료 같은 무료와 무료 같은 유료 사이에서 기준은 아직도 이리저리 움직인다. 나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7월부터는 세계경영연구원과 함께 여러 기업에서 AI와 AX에 관한 강의를 진행한다. 이미 몇몇 일정이 잡혔고 8월과 9월의 계획도 이어지고 있다. 거창한 미래 전망보다 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컨설턴트와 실무자가 자신의 업무에 AI를 어떻게 끌어들일지, 반복되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줄일지, 한 사람의 판단력을 어떻게 증폭할지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도 AI가 깊이 들어와 있다.


요즘 나는 기획은 챗GPT, 구현은 클로드 코드라고 말한다. 내가 조율하면 둘은 제법 찰떡같이 움직인다. 나는 생각의 파편을 챗GPT에게 던진다. 챗GPT는 그것을 구조화해 기획서와 실행 계획으로 바꾼다. 나는 기획서를 읽고 방향이 어긋난 부분을 고친 뒤 클로드 코드에게 넘긴다. 클로드 코드는 작업 순서를 세우고 실제 프로그램을 만든다.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구현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빠르면 반나절 안에 끝난다. 예전이라면 며칠 동안 문서와 씨름하고 다시 며칠 동안 코드를 작성했을 일이다.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시간 단위를 바꿔놓은 셈이다.


그러나 속도만 좇다가 묘한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AI는 밤새 일해도 눈이 뻑뻑해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 AI의 속도를 따라가겠다며 잠을 깎아내기 시작하면 인간이라는 병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소모품으로 바꾸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든다. 희생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을 건네고, 막혀 있던 일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면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또 다른 일과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하나와 하나를 더했는데 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산수에는 맞지 않지만 요즘 내 인생은 대체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회사를 떠날 때 혼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지는 않다. 타인의 예측을 반박하는 일에 내 시간을 쓰기에는 새로 만들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나는 그저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 조직 밖에서도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호기심을 연결해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는가. AI와 함께라면 그 가능성은 얼마나 확장되는가. 그렇게 증폭된 사람은 여전히 한 사람인가, 아니면 여러 개의 자아가 한 몸 안에서 함께 일하는 작은 조직인가.


유튜브를 시작한 지 열 달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유튜브를 정의하지 못한다. 어쩌면 정의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작가와 강사와 개발자와 크리에이터가 한 화면 안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곳. 현재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이크 앞에 앉아 다음 영상을 어떻게 시작할지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화면 한쪽의 빨간 점을 발견했다.


녹화는 진작 시작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서론은 다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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