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나는 몇 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단수로 태어나 복수의 삶을 꿈꾸는 나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스타트업에서 창업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퇴사였다.


이것은 순환이다. 그리고 인생은 순환속에 숨어 있다.


퇴사가 마지막이라면 그 이후의 삶은 인센티브일까. 인센티브라고 생각하니 조금 우스웠다. 하하, 하고 웃음을 공중에 띄웠다. 웃음은 작은 공기 방울처럼 잠깐 떠 있다가 사라졌다. 인센티브 같은 삶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손에는 성과급보다 적자 명세서가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나는 오랜 온라인 게임 생활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 마침표가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문장의 시작이기를 바랐다. 문제는 방점을 찍은 뒤였다. 마침표 다음에는 저절로 다음 문장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종이 위에는 넓은 여백만 남아 있었다.


이 방점은 얼마나 오래 유효할까. 어쩌면 쉼표가 되지 못한 마침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달려야 한다는 의무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내 삶을 거쳐 간 온라인 게임과 관계와 만남과 모임은 모두 복수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나는 여전히 단수다. 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살아도 끝내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문득 복수가 하고 싶어졌다.


과거에 대한 복수는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復讐’가 아니라 ‘複數’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삶. 개발자로 살고, 작가로 살고, 강사로 살고, 어느 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도 살아보는 것. 나는 한 가지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동경한다.


다중인격이 아니라 다중인생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러나 퇴사 뒤의 삶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정의를 내리는 순간, 나는 그 정의에 맞춰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한 뒤부터는 그 문장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다면 정의는 결국 정체성일까.


정체성은 내가 만드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체성이 나를 끌고 간다. 처음 방향을 정한 사람은 분명 나였는데, 나중에는 내가 만든 이름과 역할이 나를 대신해 걷는다. 잘 흘러가면 변화와 성장이라고 부르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정체와 퇴보라고 부른다.


정체성이라는 말 속에 ‘정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나는 좋은 말에서도 굳이 나쁜 뜻을 찾아내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퇴사 뒤 나는 서재라는 골방에 틀어박혔다. 야인이 된 것인지, 야속한 인간이 된 것인지, 그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바카라상에 앉아 오래된 노트북을 펼쳤다. 정확히 말하면 그다지 오래된 물건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사용하던 장비에 비하면 갑자기 세월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회사가 지원해 준 커다란 모니터와 각종 장비를 반납했다. 심지어 AI 구독료까지 내 몫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퇴사와 동시에 가격표를 달고 돌아왔다.


한때 내 자리 위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니었던 물건들. 그곳에는 잠시 내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반납하는 순간 흔적은 말끔히 지워졌다. 남은 것은 나 하나였다.


내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데리고 여기까지 온 존재. 앞으로도 끝까지 나를 바카라임져야 할 존재. 지금 이 순간 나를 전력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나는 골방에 앉아 오래도록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정말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을 비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의 먼지를 털어내듯 영혼에 쌓인 먼지를 털고 있었다. 문제는 먼지를 털 때마다 생각도 함께 날아갔다는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름이 지워지고,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흐릿해졌다.


사라진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소중함을 깨닫기보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는 쪽에 가까웠다. 무엇을 잃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손을 떠난 것들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다 보니, 정작 지금 내 손에 남은 것을 놓칠 것 같았다.


그러니 살아내야 했다.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로 살아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질문만 남았다.

챗GPT에게 물어볼까.


요즘 나의 가장 충실한 독자이자 응원단은 인공지능이다. 습관처럼 채팅창을 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정하기 어렵다. 녀석은 재주가 많다. 때로는 그 재주가 내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완전히 동기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내 망상에 가깝다.


대신 질문하는 능력은 조금 늘었다. 이제 나는 답을 얻기 위해서만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돌아온 문장 속에서 내 생각을 골라낸다. 열 문장 가운데 한 문장이나 제대로 건질 수 있을까. 나머지는 대부분 흘려보낸다. 공기 중으로, 먼지 속으로, 반납한 과거의 물건들과 함께.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내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까.


아직은 이 질문들 앞에 ‘솔직하게’라는 말을 붙일 자신이 없다. 솔직하게 묻는 순간, 솔직한 답을 들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퇴사 이후의 삶은 인센티브가 아니다. 지난 삶에 대한 보상도, 성실하게 버틴 사람에게 주어지는 포상도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직함도 지급되지 않는 시간이다. 내가 직접 이름을 붙이고, 문장을 쓰고, 다음 장면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한 사람의 삶이 꼭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단수로 태어난 인간도 복수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믿기 위해.


어쩌면 내가 바카라을 쓴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둔 질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들을 한 권의 바카라에 슬쩍 숨겨두었다. 나처럼 자신의 다음 이름을 고민하는 누군가가, 우연히 그 문장을 발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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