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없는 날들의 생존 실험
퇴사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공단에서 고지서 한 장이 날아왔다. 금액은 50만 원이 넘었다.
놀라운 숫자였다. 그동안 막연하게 떠돌던 불안이 구체적인 금액으로 환산되어 눈앞에 놓였다. 공포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형태가 없던 걱정이 숫자를 얻는 순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
조심스럽게 통장을 열어보았다. 숫자보다 공백이 더 많았다.
적금을 해약해야 하나. 다시 온라인 게임으로 돌아가야 하나. 마음은 장날처럼 시끄러운데 통장은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시골 마을처럼 고요했다.
이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없다. 매달 같은 날짜에 나를 안심시키던 숫자도 사라졌다.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꿈이나 자아실현에 앞서 생존의 문제였다.
걱정한다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단 살아야 한다. 아니, 살아내야 한다. 퇴사 이후 내게 ‘산다’는 말은 이전보다 훨씬 능동적인 동사가 되었다.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퇴직금은 건드리지 않는다. 무작정 자영업에 뛰어들지도 않는다. 30년 넘게 나를 먹여 살린 전공과 경험을 밑천 삼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한다.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 잘 살아왔다. 한 조직에서 30년 넘게 버티고 살아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생각만큼 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이유로 남은 인생을 대충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월급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월급 속에 돈만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소속감과 직함이 있었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과 신용이 있었다. 가족을 바카라임지고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고, 다음 달 역시 그럭저럭 무사할 것이라는 희망도 들어 있었다.
월급은 돈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었다.
이제 나는 그 안정적이고 평균적인 단어들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처음에는 내가 경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경쟁력을 잃었다고 느꼈다. 회사를 나오자 내가 가진 것들의 가격표가 모두 떼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 자신을 지나치게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지난 30년을 함부로 평가하는 또 다른 오만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퇴사를 준비했다. 퇴사하는 날만 상상하며 살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퇴사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퇴사가 아니라 자립이다.
회사를 떠났다고 해서 나를 증명하던 모든 가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게도 아직 숨겨둔 가격표가 남아 있었다.
유튜브 구독자는 1만 명을 넘었다. 광고 수익은 보잘것없지만 매달 조금씩 들어온다. 도서관에서는 여전히 강의를 요청하고, 이제는 기업에서도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열한 번째 바카라을 출간했다. 공교롭게도 제목에 ‘생존’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생존은 바카라의 주제이기 전에 이제 내 삶의 주제가 되었다.
물론 잃은 것도 있다. AI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정과 멀어진 시간도 많았다. 구독료를 아깝지 않게 쓰겠다며 토큰을 시계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토큰이 줄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나는 AI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집착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 삶을 하나의 실험으로 삼고 있다.
실험의 주체도 나이고, 실험 대상도 나다.
한 편의 글.
바카라 한 권.
유튜브 영상 하나.
직접 만든 코드와 서비스.
바이브랩스 커뮤니티.
강의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독자와의 관계.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새로운 자산을 만드는 실험이다.
변화를 예술처럼 다루고 싶어 하는 나에게 지금의 삶은 거대한 실험 무대다. 물론 이 실험은 월급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위험과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지하게, 때로는 즐겁게 임하게 된다.
남은 인생에도 완전한 안심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숫자에 흔들릴 것이다. 바카라 판매량에 마음이 내려앉고, 영상 조회수에 불안해지고, 강의 신청자 수를 보며 내 가치를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다르다.
이제 내가 흔들리는 숫자는 회사가 매긴 숫자가 아니다. 내 이름으로 만든 글과 영상, 바카라과 서비스에 찍힌 숫자다. 비록 작더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낸 숫자다.
어쩌면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삶의 의미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가 붙여준 가격표를 잃고, 내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쓴 바카라이 《AI 생존 지도》다. AI 시대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보다, 결국 ‘나’라는 자산을 어떻게 만들고 살아남을 것인지 고민한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바카라의 다음 장을 내 삶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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