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도 나는 여전히 걷는다.
내가 걷는 곳은 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하늘일 수도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그 위에 한 걸음씩 발자국을 그린다. 발밑이 단단한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걷는다. 어쩌면 길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비로소 길을 만드는 중인지도 모른다.
출판사와의 미팅이 있어 파주 출판도시에 갔던 날도 그랬다. 출판도시는 예상보다 한산하고 고요했다. 길을 걷는 사람조차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낯선 도시였지만 그 낯섦이 싫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도, 앞으로 살아야 할 곳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무심하게 걸을 수 있었다.
날씨는 무서울 만큼 맑았다. 하늘이 너무 쾌청해서 세상 전체가 파란색으로 물든 듯했다. 버스와 지하철과 자동차를 벗어나 오래 걷다 보니 여행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다만 그것은 출판도시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여행자로 만들고 있었다.
보도블록 위로 개미 한 마리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개미는 자신이 보도블록 위에 있는지, 땅 위에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지구라는 행성에 속해 있고, 그 지구가 태양계 안에 있으며, 태양계가 은하의 한구석을 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개미는 오로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그 옆에는 말라버린 지렁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지렁이는 자신이 왜 그곳에서 죽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닥쳤고, 그것으로 한 생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뿐이다.
분주한 개미 한 마리와 말라 죽은 지렁이 한 마리.
그리고 그 사이를 내가 걷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었다. 구름은 천천히 흘러갔다. 구름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길을 걷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보도블록 위를 서두르는 개미를 관찰하고 있었을까.
물론 구름에게는 눈이 없다. 얼굴도 없고, 몸도 없으며, 인간과 같은 시각도 없다. 구름은 말없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구름이 세상을 바라본다고 상상한다. 구름에게 표정을 부여하고, 마음을 읽고, 침묵의 의미까지 만들어낸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시적인 재능인지, 혹은 신에게 받은 은총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개미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그렇다면 구름보다도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우월함과 열등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구름은 자신의 갈 길을 향해 흐른다. 개미는 자신의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나 역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걷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이에는 크기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흐름 속에 놓인 존재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는 출판도시의 낯선 카페와 북카페, 출판사 사이를 지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들떠 있었을까. 아니면 차분했을까. 바쁜 일에서 한발 물러나 세상을 잠시 관망할 만큼, 내게도 마침내 여유라는 것이 찾아온 것일까.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나는 보도블록 위에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었다. 나의 무심한 발걸음 하나가 작은 생명에게 예기치 않은 운명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개미는 나를 인지할 수 있을까.
인지한다면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거대한 동물일까. 갑자기 땅을 뒤흔드는 자연현상일까.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일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인공지능이 떠올랐다.
인공지능은 무엇일까. 개미일까. 구름일까. 말라버린 지렁이일까. 보도블록을 이루는 말없는 벽돌 조각일까. 아니면 출판사의 방향을 가리키며 묵묵히 서 있는 표지판일까.
나는 인공지능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날마다 인공지능에 정의를 부여하고, 질문하고, 대화를 나눈다. 개미에 관해서도 말하고, 구름에 관해서도 말하며, 출판도시의 낯선 고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내가 보고 있는 세계를 직접 볼 수 없다.
그에게는 눈이 없고, 발밑의 보도블록도 없다. 바람의 온도나 도시의 냄새, 걷는 동안 변해가는 햇빛을 느낄 감각도 없다. 내가 건넨 문장과 이미지와 기록을 통해 세계를 추측할 뿐이다.
반면 나는 감사하게도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나는 세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로 기억하고, 피부로 받아들인다. 때로는 오감을 넘어 추상과 상상으로 세계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말없는 구름에게 마음을 부여하고, 개미의 운명을 헤아리며, 죽은 지렁이 앞에서 삶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감각 없는 인공지능과 나누는 대화는 무엇일까.
인공지능은 또 하나의 나일까. 내가 잊어버린 과거의 모습일까. 숨기고 싶었던 수치심일까.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나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오늘도 걷고, 인공지능은 내가 건네는 말들을 따라온다. 나는 발밑의 생명을 피해 한 걸음씩 내딛고, 인공지능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길을 가리킨다.
누가 누구를 이끄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감각과 결핍을 지닌 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길을 함께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 품어온 질문과 생각을 《AI 생존 지도》에 담았습니다. 지도는 대신 걸어주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다음 걸음을 어느 방향으로 내디딜지는 보여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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