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by김유리

어느 순간인가부터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마치 나를 같은 시간 속에 멈춰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어제와 오늘내일이 별다를 것 없는.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는 날들의 반복.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모르겠는 무의미한 삶.


언제부터였을까. 내 시간이 멈춰버렸던 건..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기억이 촘촘하게 쌓이고,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반복되는 일상일수록 기억이 거의 남지 않고, 시간이 압축되어 사라진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아무 일도 없던 날들이 쌓일수록, 내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독립을 결심하고, 집을 계약하고, 가구를 들여놓고, 청소를 하면서.

멈춰 있던 시간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렵다.


지난주,

그간 살아오면서 끌어안고 살아왔던 짐들 중 종이가방 하나 정도의 짐을 버림을 시작으로

나는 한 보따리의 안 입는 옷들을 버렸고, 계속 필요 없는 것들을 추려내며 버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에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하고 싶었다.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내가 살 집과 어울리는지, 방 사이즈와 맞는지.

줄자로 사이즈를 재가면서 주문한 것을 받고, 조립해서 설치하며 하나씩 채우는 과정이 꽤 즐거웠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완벽했던 건 아니다.

베란다 창에 커튼을 달기 위해 창의 길이를 재고, 그 길이 그대로 커튼을 주문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차렸을까?

막상 설치해 보니, 커튼은 창을 다 가리지 못했다.

접히는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이미 포장을 뜯어서 설치한 상태라 반품 교환하기가 애매했다.

원래 2p 세트 단위로 판매하는 상품인데, 1p만 추가로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 남겨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근데, 난 이 엉성한 나의 허술함이 반가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부족해 보이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안전한 선택만 해왔다.


그래서였을까.

내 삶은 언젠부턴가 실수도, 실패도 없는 대신 새로운 일도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사이즈를 잘못 재서 커튼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했지만,

내가 직접 선택하고, 해본 결과였다.


누군가가 정해준 방식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끝까지 해본 일.

그래서 이 어설픔이 오히려 나를 조금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이 정도의 허술함쯤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이 커튼과 비슷한 모양일지도 모르겠다.

딱 맞게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달아 놓은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그런 모습.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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