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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함정에 빠진 한국 정치의 미래는

일시적인 인기몰이가 정치의 본질일 수는 없다

byFrancis Lee

한국 정치가 위험한 함정에 빠졌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정치가 유튜브 조회수와 쇼츠의 자극적인 장면에 목을 매고 있다. 정바카라의 타당성을 놓고 토론해야 할 국회에서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고, 상대방을 얼마나 통쾌하게 공격했느냐가 정치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처럼 변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공적 활동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자기편의 환호를 끌어내기 위한 공연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2026년 10월 15일 보도한 정치 유튜브 관련 기사는 이 심각한 현실을 드러낸다. 정치 유튜브 채널 6곳의 실시간 채팅 약 1,409만 건을 분석하고 국회 보좌진과 당직자 165명을 조사한 결과는 정치권이 온라인 강성 지지층의 반응을 얼마나 의식하는지 보여준다. 조사 응답자의 31.6%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우려해 정치적 입장을 조정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튜브 여론의 과격성에 동의한다는 응답도 87.4%에 달했다. 정치 현장에 있는 사람들조차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까지 추락해야 하는가.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주거 불안과 청년 실업을 해결하고,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응하며, 불평등을 완화하고,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이러한 과제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치열한 토론, 이해관계의 조정, 때로는 당장의 인기를 포기하는 결단까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쇼츠 영상 몇십 초에 담기 어렵다. 반면 상대방에게 삿대질하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은 손쉽게 편집해 유통할 수 있다. 복잡한 정바카라보다 자극적인 충돌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합리적인 설명보다 통쾌한 조롱이 더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에서 정치의 본질은 조금씩 밀려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미디어 소비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행동과 판단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수많은 댓글이 쏟아지고 강성 지지층이 특정 정치인을 영웅으로 추켜세우거나 배신자로 낙인찍으면, 정치인은 그 반응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다음 선거와 공천, 당내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국민 전체를 설득하는 것보다 자기편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합리적인 타협은 굴복으로, 상대방의 정당한 지적은 공격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배신으로 취급된다.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보다 지지층의 즉각적인 반응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튜브 정치의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정치인이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반응이 정치인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조회수와 댓글을 민심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온라인에서 수만 개의 댓글이 특정 주장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국민 다수의 생각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치적 관심이 높은 사람, 특정 정당에 강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이 큰 사람이 온라인에서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댓글을 작성할 수도 있고, 특정 채널의 시청자 자체가 한쪽 진영에 편중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이런 목소리를 국민 전체의 뜻처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민심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민심을 오독하는 무능이다. 조용히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 정치적 논쟁에 참여할 시간조차 없는 노동자,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중도층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 것인가. 댓글창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는가.

더구나 유튜브 정치의 구조는 분노를 상품으로 만든다.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는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고, 관심은 조회수로 이어지며, 조회수는 영향력과 수익의 기반이 된다.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고, 정치적 갈등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며, 타협과 대화를 배신으로 몰아갈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정치 유튜버가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 감시와 사실 검증, 정바카라 분석에 기여하는 채널도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갈등이 더 큰 관심을 얻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합리적인 토론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이 구조에 편승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회에서 일부러 충돌을 연출하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발언을 던지고, 그 장면이 쇼츠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면 국회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입법과 국정 감시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인가, 아니면 정치 유튜브에 공급할 자극적인 영상을 생산하는 촬영장인가.

국회의원의 발언은 수많은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그 발언의 목적이 정바카라을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라면, 공적 권한을 사적인 인기 관리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가 정치인의 개인 방송용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치가 장기화하면 민주주의의 질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제도이지만, 그 충돌에는 규칙과 바카라임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고, 타협하는 사람을 배신자로 몰며, 사실보다 진영의 충성도를 앞세우면 민주주의는 토론의 체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집단들이 벌이는 끝없는 전쟁으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정작 정치적 소음에 참여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치권이 온라인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집값은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지, 청년들이 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지, 노후 빈곤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다. 국민은 정치적 승리를 위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꾸는 정바카라을 원한다. 정치인이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다면 그 어떤 조회수도 정치적 실패를 가릴 수 없다.

물론 정치인은 국민의 관심을 얻어야 한다. 정바카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관심을 얻는 수단이 정치의 목적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인기는 정치적 바카라임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일 뿐, 그 자체가 정치의 성과일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대중의 환호를 얻는 능력과 국가를 올바르게 이끄는 능력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았다. 군중의 박수는 순간적이지만 정바카라의 결과는 오랫동안 국민의 삶에 남는다. 말 한마디로 지지층을 열광시킬 수는 있어도, 그 열광만으로 경제를 살리고 슬롯적 갈등을 해결하며 미래 세대의 삶을 보장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자신을 향한 환호가 사라진 뒤에도 바카라임질 수 있는 정바카라을 만들어야 한다.

정당 역시 바카라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성 지지층의 환심을 얻는 데만 몰두하는 정치인을 영웅으로 만들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내부 비판을 배척한다면 정당은 공적 바카라임을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지층의 감정을 관리하는 집단으로 변질된다. 당 지도부가 조회수와 온라인 반응을 정치적 역량의 척도로 삼는다면 결국 조직 전체가 단기적인 인기 경쟁에 빠져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잃게 될 것이다.

정치의 품격을 회복하려면 평가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조회수를 얻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법안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의 삶을 개선했는지, 재정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슬롯적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언론 역시 정치인의 자극적인 발언과 충돌 장면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검증해야 한다. 시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상대방을 공격할 때마다 열광하기보다 그 공격이 자신의 삶에 어떤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는지 질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지층의 모든 요구가 옳은 것은 아니며, 대중의 모든 분노가 정당한 것도 아니다. 민주적 지도력은 대중의 감정에 무조건 편승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공동체에 필요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때로는 자기편의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정바카라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인기 있는 정치와 바카라임 있는 정치의 차이다.

유튜브의 시대라고 해서 정치의 본질까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정치의 전달 방식을 바꿀 수 있지만 정치가 지켜야 할 바카라임과 원칙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조회수는 늘었다가 줄어들고, 유행하는 정치인은 새로운 인물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잘못된 정바카라의 대가는 국민이 부담하고, 정치적 갈등이 남긴 상처는 슬롯 전체가 감당한다.

정치인은 유튜브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국회는 쇼츠의 소재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슬롯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인의 순간적인 언변이나 자극적인 장면에 박수를 보내기 전에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해냈는지 물어야 한다.

일시적인 인기몰이는 정치의 본질일 수 없다. 조회수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어도 조회수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는 없다. 자기편의 환호에 취한 정치인은 결국 국민의 현실을 보지 못한다. 국민의 고통보다 댓글창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 정치, 정바카라의 성과보다 상대방을 조롱하는 장면을 자랑하는 정치, 타협을 배신으로 몰아가는 정치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무는 정치다.

대한민국 정치가 유튜브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민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정치인이 연기하는 민주주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국회에는 카메라와 박수, 고성과 환호가 넘쳐날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정치가 존재해야 할 이유, 곧 국민의 삶을 바카라임지는 공적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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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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