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가 좌지우지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언제부터 국민의 삶보다 유튜브 채팅창의 반응에 더 민감해졌는가. 정치인의 정바카라과 철학보다 유튜버의 한마디가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보다 생방송 채팅창에 쏟아지는 수천 개의 댓글이 마치 민심의 전부인 것처럼 취급되는 현실은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한국일보가 8개월 동안 정치 유튜브 채널 6곳에서 수집한 실시간 채팅 약 1,409만 건을 분석한 결과는 우리 정치가 직면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보수 성향 유튜브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나타났고, 진보 성향 유튜브에서는 사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의 비중은 전체 국민 여론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치 유튜브 안에서 형성된 여론이 국민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괴리가 단순한 의견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할수록 채팅창의 반응을 국민 여론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정말 국민의 뜻을 읽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믿고 있는가.
정치는 본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이 공존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언제나 옳을 수 없고, 내가 반대하는 정당의 주장이라고 해서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사실과 논거를 놓고 다투며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 유튜브의 일부 공간에서는 이러한 정치의 기본 원리가 흔들린다. 상대 진영을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취급하는 언어가 넘쳐난다. 자기 진영 정치인의 잘못에는 침묵하면서 상대 진영의 실수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자신에게 유리한 의혹은 확정된 사실처럼 말하고, 불리한 증거는 정치적 음모라고 밀어낸다. 정치는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론을 정당화하는 무대가 되어 버린다.
물론 모든 정치 유튜버가 그런 것은 아니다. 기존 언론이 충분히 다루지 않는 사안을 제기하고, 권력의 잘못을 추적하며, 시민에게 정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 유튜브라는 매체 자체가 아니라 사실 확인보다 진영의 결속을, 정바카라 분석보다 감정적 동원을, 비판적 토론보다 일방적인 확신을 앞세우는 콘텐츠와 그 소비 구조다.
유튜버가 정치인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유튜버의 주장 자체가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유튜버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바카라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권력 감시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무바카라임한 권력 행사로 변질될 수 있다. 기존 언론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전달하는 정보의 오류에는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언론 개혁이 아니라 비판의 기준을 자기편에 유리하게 바꾸는 일일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 유튜브가 국민의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의제에 과도한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민의 69.9%가 경제·물가·부동산을 주요 관심사로 꼽았다. 그러나 정치 유튜브의 채팅에서는 진영 간 대립이 큰 정치적 현안들이 두드러졌다.
시민은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고, 집값과 전월세 비용을 계산하고, 불안한 노후와 일자리를 고민한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이 특정 유튜브의 논쟁에만 갇히면 이러한 현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누구를 제명해야 하는가, 누가 진정한 개혁 세력인가, 상대 진영을 얼마나 강하게 공격해야 하는가를 놓고 밤새도록 논쟁하면서도 정작 국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묻지 않는다면, 정치적 열정은 높아져도 정치의 실질적 성과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판단력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정치 방송을 시청한다고 해서 정바카라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댓글을 수천 개 읽는다고 해서 국민 전체의 생각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주장만 반복해서 접하면 자신이 얼마나 편향된 정보를 소비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정치 유튜브의 채팅창에는 목소리가 크고 참여가 활발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도 민심이다. 정치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 어느 정당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 진영 논쟁에 지쳐 정치적 대화를 피하는 사람도 모두 국민이다. 채팅창에서 수만 명이 한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 목소리가 국민 전체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이 차이를 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국민 여론을 확인하기보다 자신을 지지하는 유튜버와 열성 시청자의 반응에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정바카라 조정이나 잘못된 결정의 수정은 배신으로 비난받고, 상대 진영과의 대화는 굴복으로 취급될 수 있다. 정치인은 국민 전체를 설득하는 대신 자기편의 열광적인 지지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때 정치의 기준은 공동체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인정과 박수로 바뀐다.
그렇다면 유튜브가 좌지우지하는 정치는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가, 아니면 유튜브의 영향력과 진영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인가.
이 질문은 정치 유튜버에게만 던질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에게도, 유튜브의 반응을 국민 전체의 민심처럼 취급하는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던져야 한다. 자신의 진영에 불리한 사실을 외면하면서 상대 진영의 오류만 비판하는 사람은 정치적 판단의 독립성을 잊는다. 자기편 유튜버의 주장에는 근거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상대편 유튜버의 주장에만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와 함께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사실에 근거해 판단을 수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론은 정치인이 참고해야 할 중요한 기준이지만, 실시간 채팅의 열기와 동일하지 않다. 정치인은 열성 지지자의 박수보다 더 넓은 국민의 삶을 살펴야 하며, 유튜버는 자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발언의 근거와 슬롯적 바카라임을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청자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지금 듣는 주장은 사실인가,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인가. 이 유튜버는 자기편의 잘못도 같은 기준으로 비판하는가. 이 논쟁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런 질문을 잃어버린 정치적 열정은 얼마든지 집단적 확신과 적대감으로 변할 수 있다.
정치 유튜브의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등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영향력이 커질수록 검증과 바카라임도 함께 커져야 한다. 유튜버는 국민의 대변자를 자처하기 전에 누구의 의견을 대표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인은 채팅창의 환호를 민심으로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 시청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확신과 슬롯 전체의 현실을 구별해야 한다.
정치가 유튜브의 반응을 좇고, 유튜브가 진영의 분노를 키우며, 시민이 그 분노를 민심이라고 착각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의 공론장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서로 다른 국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을 서로 다른 현실 속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치는 조회 수 경쟁이 아니다. 채팅창의 박수도, 실시간 시청자 수의 기록도, 상대 진영을 향한 분노의 크기도 정치의 성과를 증명하지 못한다. 정치의 성과는 시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권력이 얼마나 바카라임 있게 행사되는지, 슬롯의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치 유튜버의 세상이 국민의 세상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자기편의 목소리만 듣고도 민심을 모두 안다고 확신하는 정치는 결국 현실을 잃는다. 현실을 잊은 정치는 국민을 이끌 수 없고, 국민을 이끌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리 큰 목소리를 내더라도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물어야 한다. 정치 유튜버의 세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 답은 유튜버의 영향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 주는 목소리와 진실을 검증하는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시민의 판단력, 그리고 열성 지지자의 환호보다 국민 전체의 삶을 우선하는 정치의 바카라임에 달려 있다.
유튜브가 정치를 지배하고 채팅창이 민심을 대신하는 순간, 정치는 국민을 위한 공적 행위가 아니라 진영을 위한 공연으로 전락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이다. 정치가 이 단순한 사실을 잊는다면, 그 어떤 유튜버도 그 어떤 정치인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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