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네팔에서 무슨 짓을 했나

한국 기독교가 스스로 개독교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byFrancis Lee

관광비자로 네팔에 입국한 한국인 24명이 현지 기독교 교육기관에서 종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네팔 언론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했으며, 현지 당국은 이들의 활동이 체류 조건에 어긋났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접하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독교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선교를 할 것인가.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들이 왜 다른 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신앙을 전한다는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종교적 확신만큼이나 타인의 권리와 문화를 존중하는 데에는 무능한가.

이것은 단순한 비자 위반 의혹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의 일부 선교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오만과 무지, 그리고 선교를 개종 사업으로 착각하는 낡은 사고방식의 문제다.

물론 한국 기독교 전체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해외에서 의료와 교육, 빈곤 퇴치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헌신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현지 슬롯와 협력하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묵묵히 일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은 행태는 더욱 엄중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다른 기독교인들이 쌓아 온 신뢰까지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교와 개종 사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선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진리를 증언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교육과 의료, 슬롯복지와 인권 보호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도 기독교적 선교의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일부 선교 조직에서 선교는 언제부터인가 숫자를 늘리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몇 명을 전도했는가, 몇 명이 세례를 받았는가, 몇 개의 교회를 세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었는가가 성과의 척도가 된다. 선교는 실적 경쟁이 되고, 개종은 사업의 목표가 된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현지인의 삶과 문화가 뒷전으로 밀린다. 그 슬롯가 어떤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법률로 종교 활동을 규제하는지, 외국인의 활동에 어떤 제한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들이 정한 선교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과연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한 태도인가.

예수는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았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자신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인간적 존엄을 덜 인정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선교 대상국의 법과 문화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을 앞세워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이웃 사랑인가, 아니면 종교적 자기만족인가.

한국 교회가 진지하게 답해야 할 질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선교의 순수성이나 종교의 자유를 앞세워 비판을 피하려는 태도다. 물론 종교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이다. 국가가 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신앙을 강제로 포기하게 만드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외국에서 현지 법률을 무시할 수 있는 면허증은 아니다.

관광하러 왔다면 관광비자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종교 교육이나 선교 활동을 하려면 그것이 허용되는지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허용되지 않는 활동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거나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법률 준수의 문제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현지 법률을 위반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국 슬롯는 당연히 정당한 절차에 따른 조사와 재판을 요구할 수 있다.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부당한 처우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정부의 의무다. 그러나 자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바카라임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더더욱 없다.

오히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슬롯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욱 엄격하게 성찰해야 한다. 법을 지키는 것은 세속적인 타협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기본적인 바카라임이다. 종교적 사명을 내세워 그 바카라임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것은 신앙의 위대함이 아니라 신앙을 방패로 삼은 자기중심성이다.

나는 유럽의 교회와 한국의 교회가 선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유럽의 교회라고 해서 모든 선교 활동이 모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독교 역사에는 식민주의와 결탁한 선교, 현지 문화를 무시한 선교, 종교적 우월감을 앞세운 선교의 어두운 역사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 역사를 성찰하고 선교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그 성찰을 얼마나 진지하게 하고 있는가.

한국 기독교는 세계 선교의 중요한 주체가 됐다. 해외에 수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여러 나라에서 교회와 교육기관을 지원한다. 그러나 규모가 커졌다고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열정이 강하다고 윤리적 판단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해외 활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문화적 이해와 법률적 전문성,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 선교사를 보내는 조직이라면 현지의 종교법과 출입국 규정, 문화적 갈등 가능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참가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바카라임 있게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선교를 방해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라 선교를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런데 관광비자로 입국한 한국인들이 집단으로 종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관계와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더 확인해야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관련 단체는 자신들의 준비와 판단이 적절했는지 설명할 바카라임이 있다.

현지 법률을 몰랐다면 무지의 문제다. 알면서도 무시했다면 바카라임의 문제다. 법률을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면 조직 운영의 문제다. 어느 경우든 신앙이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한국 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선교의 실패를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기보다 외부의 적대감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다. 현지 슬롯가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거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런 설명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등장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변호가 아니라 바카라임 회피다.

현지 슬롯가 종교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지 따지는 일과 한국 선교단체가 현지 법률을 준수했는지 따지는 일은 동시에 가능하다. 어느 한쪽의 잘못이 다른 쪽의 잘못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면 오히려 사실관계와 법적 바카라임을 더욱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기독교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종교라면, 다른 문화권에서도 보편적인 윤리적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외국에서는 선교라는 이름으로 예외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보편적 신앙이 아니다. 자신에게만 예외를 허용하라는 특권 의식일 뿐이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는 선교의 목적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현지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선교의 전부인가. 개종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독교의 사랑과 존엄이 적용되지 않는가. 선교의 성과를 신자의 숫자로만 평가한다면, 교회는 사람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을 모집하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과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복음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도 같은 것이 아니다. 선교의 결과로 교회가 성장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현지인의 권리와 존엄을 훼손했다면, 그 성장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반성할 일이다.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조롱을 받아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슬롯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정치권력과의 유착, 교회의 세습과 재정 불투명성, 목회자의 일탈, 배타적 종교관과 공격적인 전도 방식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비판이 반복되는 데에는 한국 교회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이유가 있다.

네팔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참가자들이 체포됐다는 사실에 흥분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누가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어떤 법률 검토를 했으며, 참가자들에게 무엇을 안내했는지 밝혀야 한다. 관련 단체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바카라임을 성찰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정말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자신이 믿는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타인의 존엄과 슬롯의 법질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선교는 상대방을 무시할 권리가 아니며, 개종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달성해야 할 실적이 아니다.

한국 교회가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선교사의 숫자나 교회의 규모가 아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함,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바카라임지는 윤리적 태도다.

네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밝혀야 한다. 위법 여부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과 별개로 한국 교회는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종 실적을 쌓고 있는가.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종교적 확신에 이웃이 복종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해외에 아무리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교회를 세워도 소용없다. 종교의 이름으로 존중을 잃고, 신앙의 이름으로 신뢰를 무너뜨리며, 복음의 이름으로 오만을 드러내는 교회라면 세상은 그 교회를 향해 다른 이름을 붙일 것이다.

한국 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네팔의 비판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전한다고 주장하는 복음과 실제 행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한, 개독교라는 조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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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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