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의 성향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터커 칼슨이 전한 도널드 트럼프의 말이다.
칼슨은 이란전쟁이 시작되기 전 트럼프와 백악관에서 대화했다고 밝혔다. 전쟁의 위험성을 설명하자 트럼프가 “당신 말이 맞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칼슨은 아이들과 손주, 미국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했지만 트럼프의 반응은 달랐다고 증언했다. 다만 이 대화는 칼슨의 증언에 의존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실제로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발언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말하는 자리도 아니다.
대통령의 결정에는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핵전력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전쟁의 위험 앞에서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권력자의 세계관이 된다.
트럼프는 실제로 최근 이란에 대해 매우 강경한 표현을 사용해 왔다.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평화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란을 “annihilate”, 즉 섬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트럼프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정바카라적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결정하는 지도자가 전쟁의 비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전쟁은 지도자가 시작한다.
그러나 죽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군인과 민간인이 죽는다.
아이들이 죽는다.
부모가 자식을 잃는다.
도시는 파괴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여기에서 히틀러가 떠오른다.
트럼프가 히틀러와 같다는 뜻이 아니다.
역사적 조건도 다르고 정치체제도 다르다.
그러나 지도자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사고방식에는 경계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 있다.
1945년 패전이 임박하자 히틀러는 독일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이른바 ‘네로 명령’을 내렸다.
철도.
통신시설.
산업시설.
보급시설.
독일 국민이 전쟁 이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까지 파괴 대상으로 삼았다.
독일 연방문서보관소는 이 명령에 독일 국민의 미래를 사실상 고려하지 않는 파괴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히틀러에게 독일의 패배는 곧 독일 국민의 가치 상실과 연결됐다.
더 섬뜩한 것은 그 사고의 구조다.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우리의 미래가 없다면 국가의 미래도 필요 없다.”
이런 사고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지도자는 국민을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에게 자신의 운명을 강요하는 사람이 된다.
바로 이것이 독재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지도자는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자신의 실패를 국가의 실패로 만든다.
자신의 패배를 국민의 패배로 만든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몰락을 국민의 몰락으로 끌고 간다.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이 그랬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은 히틀러가 독일과 자신의 운명을 연결하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으로 전쟁을 끝까지 끌고 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차피 다 죽는다”는 말이 위험한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맞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의 목적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줄이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대함은 전쟁을 시작하는 데 있지 않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붙잡는 데 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능력보다 자신의 힘을 절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특히 핵무기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한 사람의 판단이 수백만 명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를 하는 제도가 아니다.
위험한 결정을 한 사람의 의지에 맡기지 않는 제도다.
의회가 견제해야 한다.
언론이 감시해야 한다.
관료와 군부가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시민슬롯가 질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 자신이 자신의 생명보다 국민의 생명을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의 발언이 실제로 칼슨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미 분명하다.
지도자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가.
아니면 국민의 죽음을 생각하는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가.
아니면 전쟁 자체를 피하는 것까지 생각하는가.
권력자의 성향은 사적인 성격 문제가 아니다.
핵무기 시대에는 인류의 문제가 된다.
지도자 한 사람의 분노가 전쟁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오만이 참사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무모함이 역사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지도자를 감시해야 한다.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
그러나 정치의 임무는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도자의 첫 번째 바카라임이다.
지도자가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순간, 국민의 생명은 위험해진다.
그리고 핵무기의 시대에는 그 위험이 인류 전체의 위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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