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의존이 결국 분열의 세계화를 가져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2014년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전쟁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당시 “We are experiencing a Third World War fought piecemeal, a war in chapters, everywhere”라고 말했다. 3차대전은 전 세계 국가가 동시에 참여하는 하나의 거대한 전쟁이 아니라 ‘조각조각 진행되는 제3차 세계대전’, 그리고 “곳곳에서 여러 장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전쟁”이라는 뜻이었다. 2017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전쟁의 “조각들이 더 커졌고 더욱 집중되고 있다”라고 했다.
2026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면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예언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중동에서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 있는 북한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물리적인 병력과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만해협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외교협회(CFR)는 2026년 주요 분쟁 위험으로 우크라이나, 이란·이스라엘, 북한, 대만해협, 러시아와 NATO의 충돌 가능성을 동시에 지목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의 숫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전쟁들이 더 이상 서로 고립된 지역분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북한이 들어왔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에 현재 8,000명 이상의 북한군이 남아 있고 추가로 1만 명이 파견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월 4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형 제트 추진 드론 기술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전쟁을 매개로 병력·무기·군사기술이 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요한 변화다.
동유럽의 작은 지역에서 시작된 전쟁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는 아예 북한이 남한을 위협할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 발발했던 국지전은 대체로 관련 국가의 국경 안에서 끝났다. 그 전쟁에 외국 특히 강대국이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군사고문이나 무기 지원 정도로 전쟁의 외형은 지역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다르다. 무기와 기술과 정보와 자금과 병력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 한 지역의 전쟁이 다른 지역의 군사력과 안보환경을 변화시킨다.
전쟁이 말하자면 ‘세계화된 연결’(globalized interconnection)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더 이상 그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정치·기술·안보의 촘촘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타고 서로 연결되면서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강대국의 패권 경쟁이 결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러시아와 미국·유럽의 전략적 경쟁이 겹쳐 있다.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에 미국의 군사력이 직접 연결돼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동시에 미국·한국·일본의 안보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대만해협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각각의 전쟁에는 독자적인 역사와 지역적 원인이 있지만, 그 전쟁들이 움직이는 국제적 공간에는 강대국의 경쟁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쟁을 미국·중국·러시아가 뒤에서 조종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각 지역의 정치세력과 국가들이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극단, 곧 각각 전쟁을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독립된 사건으로 보는 것 역시 현실을 더 이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전쟁은 강력한 상호의존의 네트워크 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말하자면 ‘세계화된 전쟁’(globalized war)이라는 개념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화는 모든 나라의 경제만 연결한 것이 아니다. 정치와 안보와 기술과 문화와 정보까지 연결했다. 평상시에는 이 연결이 상품과 자본과 사람을 이동시키는 세계화의 힘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 동일한 연결망이 전쟁의 충격을 세계 곳곳으로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서 한국군이 그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이미 전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석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는 하루 약 2,000만 배럴로 세계 해상 석유무역의 약 25%에 해당하며, 그 물량의 약 80%는 아시아로 향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에 매우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원유 가격은 한국의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만의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 호르무즈를 위협하면 국제유가가 움직이고, 유가가 움직이면 한국의 원유 수입가격이 오른다. 다시 정유제품과 운송비와 전기·가스 비용이 영향을 받고, 생산비가 상승하며, 물가와 기업의 비용구조가 흔들린다. 중동의 미사일 한 발이 서울의 물가와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도달하는 데 국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실제로 2026년 중동전쟁 당시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 흐름은 전쟁 이전 하루 약 2,000만 배럴에서 3월부터 5월 사이 평균 270만 배럴 수준까지 급감했다. IEA는 이를 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라고 평가했다.
이것이 세계화의 역설이다. 상호의존은 평화를 위한 장치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전쟁을 세계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국제경제에서 상호의존성이 깊어질수록 한 국가의 충격은 다른 국가로 더욱 빠르게 전이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세계경제전망에서 전쟁이 발생한 국가의 생산을 크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준다고 지적했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확대될 경우 지정학적 분절이 심화되고 세계경제와 금융시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IMF의 평가다.
더 흥미로운 것은 경제적 상호의존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2026년 뮌헨안보회의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과거에는 안정의 원천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취약성의 원천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무역은 더 이상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가 되었고, 공급망의 의존성이 의도적으로 무기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세계정부를 만들지 못했다. 국가는 서로 얽혀 있지만 국가이익은 여전히 충돌한다. 경제는 국경을 넘어 하나의 시장을 만들었지만 안보는 여전히 국가 단위로 작동한다. 공급망은 세계적이지만 이를 통제하는 정치권력은 분산돼 있다.
결국 세계화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그 세계를 관리할 하나의 정치질서는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호의존이 깊어질수록 국가들은 자신이 의존하는 연결망을 통제하려 한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AI, 해저케이블, 항구, 원유, 천연가스, 금융망, 결제망이 모두 안보의 문제가 됐다. 세계화의 핵심 자산이 지정학적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데 정치적으로는 여러 블록으로 갈라지고 있다.
상호의존이 심화됐는데 상호신뢰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무역은 늘었는데 무역전쟁도 늘고 있다.
정보는 국경 없이 흐르는데 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공급망은 세계화됐는데 각국은 공급망을 다시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한다.
곧 세계화가 분열을 낳고 있다.
이를 나는 ‘분열의 세계화’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날의 전쟁은 이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전쟁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서방이 진행하는 대리전 성격의 장기적인 전략 경쟁이다. 중동전쟁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면서 에너지와 해상교통과 미국의 중동 전략이 맞물린 전쟁이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한반도의 문제인 동시에 유럽의 전쟁과 동북아 안보가 연결된 사건이다. 대만해협은 중국과 대만의 문제이면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하나의 전쟁은 더 이상 ‘A국과 B국의 전쟁’이라는 공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나의 전쟁이 다른 전쟁의 군사적 조건을 바꾸고, 다른 전쟁의 경제적 비용이 제3국으로 이동하며, 그 제3국의 대응이 다시 강대국의 전략을 바꾸는 연쇄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쟁의 전선이 국경 밖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전쟁의 후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piecemeal’이라는 표현을 오늘날에는 조금 다르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년의 교황은 세계 곳곳에서 별개의 전쟁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며 ‘조각조각 진행되는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그 조각들이 더 커지고 더욱 집중되고 있다고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 조각들은 단순히 커진 것이 아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가 연결되고, 중동과 세계 에너지가 연결되고, 대만과 반도체 공급망이 연결되고,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이 각각의 지역분쟁에 겹쳐진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제3차 세계대전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화된 전쟁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서운 이유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도 전쟁의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동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유가가 오른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현대전을 경험하고 그 군사기술과 전투 경험을 한반도로 가져올 가능성이 생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군과 추가 파견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바로 이 연결성을 보여준다.
세계화된 전쟁에서는 아무도 완전히 전쟁 밖에 있을 수 없다. 전쟁의 포탄은 특정 지역에 떨어지지만 그 파편은 금융시장과 에너지시장과 공급망과 안보질서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날아간다.
그렇다면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는 인류를 하나로 묶었는데 왜 전쟁은 오히려 세계화되고 있는가.
상호의존은 서로 싸우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는데, 왜 상호의존의 그물망이 이제는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는가.
경제적으로 하나가 된 세계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우리는 오히려 전쟁의 충격을 전 세계가 함께 떠안는 시대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조각조각 진행되는 제3차 세계대전’의 본질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하나의 전쟁이 시작되어 세계대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서로 다른 전쟁들이 정치·군사·경제·기술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충돌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세계대전은 시작과 끝을 특정하기 어렵다.
한 전쟁이 끝나도 다른 전쟁이 이어진다.
한 전선을 닫으면 다른 전선이 열린다.
한 지역의 전쟁이 끝나도 그 전쟁에서 축적된 무기와 기술과 적대관계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영구 진행형’이라는 말의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선포될 제3차 세계대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시작된 전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의존의 프레임에 갇힌 세계경제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가 그것을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상황이다.
세계화가 전쟁을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화는 전쟁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상호의존은 평화를 보장하는 안전망인 동시에 전쟁의 충격을 전 세계로 전달하는 거대한 그물망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큰 역설은 세계는 하나가 되었는데, 인간은 더 깊이 분열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아닐까?
그리고 그 분열이 전쟁으로 나타날 때, 그 전쟁은 더 이상 한 나라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혀 무관한 나라도 억지로 그 전쟁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있는 ‘영구 진행형 제3차 세계대전’의 가장 비극적인 모습이다.